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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an 12. 2023

 엄마와 여자 사이

안부 2


수술실로 향하는

족히 육십은 넘어 보이는 딸이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엄마 머리 감으셨다면서요

자식들 생각한다고 혼자 머리 감다

넘어져 다치면 어쩌시려고요


엄마를 버리러

자궁 적출하러 가는 딸이

안간힘으로 붙잡고 싶었던 엄마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중에서



한동안 글쓰기가  안 됐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짧은 단문조차도 써지지 않았다. 동료 시인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보내주는 시집도 통 손에 잡히지 않아 읽지 못하고 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면 몸이 아프니까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탓도 있다.


직장에서 나오는 월급만으로 사는 일이 빠뜻해서 투잡을 하다 보니 몸에서 자꾸만 세금고지서를 보내온다. 이번에는 정말 짜증 나게 하는 오십견이다. 이것이 잠자리에서 더 괴롭힌다는 것도 있고 또 단박에 잘 낳지 않는 아주 귀찮은 병이라는 것.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겨우 겨우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며칠 전에 큰 이모부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얼마 전에 만났던 외사촌 언니 얼굴을 못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눈치껏 외사촌 언니라는 사실은 알아차렸는데 둘째 언니인지 큰언니인지 통 감이 안 왔다. 나한테 이런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워낙 사람 얼굴을 기억 못 하는 버릇이 있어서 길 가다가  누가 인사를 하면 무조건 아는 척 얼버무리면서 "어디 가시는 중이신가 봅니다"하고 맞장구를 치고 돌아선다.


나의 이런 증상을 sns에 썼더니 친구 한 분이 은밀하게 쪽지를 보내왔다.


"혹 제 얼굴은 기억하시나요?"


"아뇨 제가 뵌 기억이 없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쪽지 대화가 몇 번 더 오고 갔다. 나에게 쪽지를 보내신 분은 문학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여러모로 훌륭한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관심 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희망을 드리면 안 될 것 같아 개인적인 만남을 사전에 차단하는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 우연히 문단 모임에서 뵜겠지요. 그때는 기억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는 문단 모임에는 잘 안 나갑니다..."


10여 년이란 시간을 혼자 아등바등 살다보니 가끔 이렇게 호감을 표현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뭐 아직은 그런대로 쓸모 있어 보인다는 사실은 엄청 감사한 일이지만 새 출발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얼굴은 우리 아이들이다. 내가 만약 재혼하게 되면 우리 애들은 어쩌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가슴으로 파고든다.


한 번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단짝이었던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친구 결혼식에서 애들 아빠를 만났고 또 헤어지다 보니 친구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유난히 크다.


"너도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해. oo씨는 재혼해서 잘 살고 있는데 왜 너만 그러고 있냐?"


"애 아빠도 재혼했는데 나까지 재혼하면 애들이 마음 둘 곳이 없을 것 같아서...'


"야! 너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애들도 다 컸고 또 애들 다 소용없어.

 니 행복이 더 중요하지 나중에 나이 들어봐라. 애들이 니 인생 보상해 줄 것 같냐?

 너는 왜 이렇게 헛똑똑이냐"


워낙 부부사이가 좋은 친정 형제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저렇게 살아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순간도 많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좋은 사람 만나 저렇게 오손도손 살아볼까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또 이제 점점 나이는 들고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다 보니 나 혼자 노년을 맞이할 자신도 없긴 하다. 그렇다고 나 좋겠다고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아직 자리도 못 잡은 우리 애들은 어쩌지 하는 마음이 재혼 생각에 태클을 걸어온다.


큰 아이가 이제 스물여덟, 작은 아이가 스물여섯 물론 만으로 치면 두 살이 더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둘 다 아직 사회에서 자리를 못 잡았다. 더구나 큰 아이는 대학도 중퇴하고 웹소설을 쓴다고 방구석 도령이 된 지 오래다 보니 아직도 꿈꾸는 이십 대 청년이다.


둘째는 고3부터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전문대학 졸업 이후에 학점은행제로 4년제 대학을 졸업시키고 사회복지사 2급, 가정폭력상담사, 성폭력상담사, 운전면허 2종 등등 사회 진출을 위한 자격증들을 취득할 수 있게 케어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회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학창 시절에 왕따 경험이 있어서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라서 이래 저래 걱정이 많다. 차라리 대학원에 보내서 언어재활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할까 싶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몇 년은 더 애들을 위해 지원군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막상 내가 재혼하게 되면 아무리 내가 벌어서 내 아이들을 지원한다고 한들, 재혼한 남편이 좋아라 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벌어 내 아이들한테 쓰는 것까지 눈치봐야 될 상황이라면 차라리 혼자 살면서  아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면 어떨까도 싶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쉽사리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스스로 헤쳐왔던 내 인생처럼 아이들한테도 그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나는 겨우 상고를 졸업한 이후에 스스로 노력해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박사과정 1년을 보낸 후에 경제적인 이유로 때려치웠지만... 내 아이들은 질경이 기질이 없으니 내가 힘이 되어 주어야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나한테 그런다.


"다 선생님이 애들을 망치고 있는 거예요

 애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지 자꾸 싸고도니까 그런 거예요"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방목해야 되고 자립시키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개성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니 그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그런데 또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면 참으로 객관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친한 언니가 재혼을 앞두고 애들 문제로 엄청 갈등을 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언니!~ 애들 생각한다고 그대로 혼자 살면 나중에 애들한테 짐 되니까

 좋은 사람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가요.

 이제 애들도 다 컸고 다들 제 밥벌이는 하잖아요"


물론 우리 애들이 자기 밥벌이를 하게 되면 나도 쿨하게 새 출발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쿨할 수 없는 것이 어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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