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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Jan 12. 2023

좀 씩씩한 나?

폐업신고


조서정  


오늘부로 생산라인 가동을 멈춥니다

그동안 매월 발주 물량 맞춰보겠다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숙명인 줄 알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불량품이 나올까 봐

한 눈도 못 팔았습니다

씽씽 잘 돌던 때에는

계획에 없는 제품도

막 쏟아져 나왔습니다

슬슬 녹이 슬고 전기 공급 장치에

이상이 생기면서부터는

다달이 경상수지 맞추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어느덧 감가상각비만 늘어

병원비만 불어났습니다

이러다 거푸집 더미에 깔려 이승을 떠난

일용직 하청 노동자처럼

공장 잔해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들기 전에

서둘러 철거 동의서에 사인하던 날

쓸모를 잃어버린 거푸집과

청춘의 아픈 기억마저 버리고 나니

마침내 내 몸의

미니멀라이프가 실현되었습니다


- 2022년 시로여는세상 겨울호



아무것도 안 해도 먹는 것이 나이라고 한다. 그렇지 무엇을 하든 안 하든 나이는 먹는다. 오십을 넘기고 보니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늘어난다. 재작년부터 수술대에 몇 번 누웠다고 하면 대충 내 몸의 성적표가 나올법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입원 기간이 마침 코로나19 상황이라서 보호자가 없어도 됐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간호통합병동에 입원해서 보호자 없이 치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 같이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코로나19 상황이 어쩜 심리적으로는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의례히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보호자는 안 오셨나요?"


"네에"


수술실에서 나올 때도 같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보호자가 있냐는 질문을 받는 것은 참 곤혹스러웠다. 대 놓고 "저는 보호자가 없는 사람이에요. 제가 저의 보호자고 또 이 세상에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요" 이렇게 소리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랬음에도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씩씩하게 혼자 입원하고 혼자 수술받고 또 혼자 퇴원했다. 이 정도면 참 많이 씩씩한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수술 전에 담당 의사 선생님한테 내 시집을 갔다 드린 적이 있었다. 그것도 직접 드리기 쑥스러워서 간호사실에 맡겨두고 왔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나서 하루쯤 지났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이 시집을 전해 받으셨는지


"시 쓰시는 분이라 내공이 깊으셔서 그런지 회복이 빠르시네요"


왠지 이 한마디가 그동안 보호자 없냐는 질문에 대한 모든 보상이 되는 것만 같았다. 수술받고 나서 통증이 올 때마다 한 번씩 누르라고 매단 무통주사도 남기고 추가 진통제 처방도 마다했다. 대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병실 복도를 열심히 누볐다. 몸이 전 재산인데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는 사실 앞에서 씩씩해져야 했다.


병상에 누워있다 보면 주변 상황들이 다 가슴으로 스며든다. 한 번은 양 옆 병상에 외국인 환자가 누워 있었다. 내 왼쪽 병상에 누워 있던 환자는 이주결혼여성이었다. 병원 전담 사회복지사가 찾아와서 혹 통역해 줄 만한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통역 가능한 언니라는 분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통화 내용은 이랬다.


"저 병원 사회복지사인데요.  ooo 씨 언니분 되시죠? 다름이 아니고 oo 씨 맹장 수술비가 천오백만 원이 넘게 나왔어요.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면 수술비를 조금만 내도 되는데..."


병원사회복지사는 가능하면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쪽에서 돌아온 대답은 그냥 천오백만원을 수술비로 지불하겠다는 것. 여관청소해서 모아둔 돈이 딱 천오백 정도가 된다고 한다. 간단하게 의료보험가입 절차만 밟으면 될 일을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릴까 싶었다. 물론 속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에 한 번 더 철렁했다.


"그게 아니고 oo 씨 맹장도 문제지만 이번에 수술하다가 암이 발견됐어요. 우리 병원에서 퇴원하시더라도 암치료를 받으셔야 되는데..."


사회복지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통 말이 안 통하는 눈치였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싶으면서도 커튼 뒤 옆 병상에 누워있을 어느 이주결혼여성의 사연이 못내 안타깝게 다가왔다. 무슨 사연으로 먼 타국까지 와서 병치료도 못 받을 상황이 되었을까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찡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은 시절보다 아픈 곳이 많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한다. 그래서 엄마는 늘 나한테 잔소리를 하신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늙어서 아플 때 병원 같이 다녀줄 사람이면 돼.

 니 아버지가 다른 것은 잘 못했는데 병원은 참 데리고 다녔잖니

 그래서 지금도 누우면 니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그러니까 너도 병원 잘 데리고 다녀줄 사람 있으면 재혼해라"


막상 병원 치료를 받을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 말씀이 가슴에서 시냇물 소리를 내며 흘러가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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