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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Feb 02. 2023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제는 퇴사한 직원한테 전화가 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나한테 전화한 이유가 너무 자명했기 때문이다. 퇴사 이후에도 편하게 안부를 묻고 만나서 식사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나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전도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교회 행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또 그뿐만 아나라 다른 직원한테도 전도를 위해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마디로 무신론자이다. 그렇다고 신앙있는 사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개인마다 자기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전도하기 위해 계속 접근해 온다면 그 또한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뭐 따지고 보면 나도 한때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새벽기도부터 다양한 교회 행사에 참여하면서 신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 철학이나 주역 사상을 더 좋아하게 됐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보면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10년간 수행하고 내려오면서 "아직도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 나는 니체가 선언한 "신은 죽었다"는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야 되고 또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된다는 사실에 더 동의한다.


또 최근에는 주역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이 세상에서 고정된 것은 없고 다만 변화할 뿐'이라는 사실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두 축에서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 변화의 원리를 파악해서 앞으로 도래할 미래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이 변화의 원리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재 상황에만 집중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우를 범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를 예로 들어보면 노총각 노처녀로 만나 결혼한 부부가 겨우 3년 정도를 같이 살고 직업적인 이유로 주말부부를 거쳐 월말부부로 살고 있다. 보통 연애에서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간을 아무리 길게 잡아도 3년이라고 한다. 3년 동안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아기를 낳고 변화에 적응하며 살았다면 그 이후부터는 현실이다.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3년 이후부터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조율하면서 맞춰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막상 어떤 이유 때문에 서로 떨어져 지내다 보면 어쩌다 만나는 부부 사이가 서먹할 수밖에 없다. 서로 서먹하고 불편한 상황들이 겹쳐지다 보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조율하려는 노력보다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이 상황에서 불편해진 이들 부부의 관계를 유일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은 자식이라는 끈이 유일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오로지 돈 버는 기계가 된 남자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에 의지하게 되면서 몸에 병이 찾아왔다. 남자는 현재 당뇨병을 얻어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전방 근무를 하고 있다. 남자는 한때 전역을 고민했지만 아내의 만류로 울며 겨자 먹기로 군복무를 지속하고 있다.


사실 남자의 아내가 전역을 반대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직업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는 성격을 맞춰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번 보고 사는 것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어긋난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둘째 경제적인 문제는 같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아직 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같이 노력하면 먹고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해야 관계 개선도 가능하고 일을 해서 돈도 벌 수 있다. 건강을 잃고 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남자의 경우 지금 상태를 계속 방치하게 되면 건강이 더 악화되어 제대로 가족들과 살아보지도 못한 채 안 좋은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가족은 가능하면 함께 살면서 맞춰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무조건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문제는 쌍방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역에서 말하는 이 우주의 원리는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우주 변화의 놀라움은 음과 양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인 동시에 서로 보완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음과 양의 개념이지만 이 둘 사이에는 상보성의 원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음양은 무조건적인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서로 보완하는 개념이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상황에 따라 상반된 음양의 관계였다가 상보적인 음양의 관계로 변화될 수 있다.


위에 소개한 부부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계속 월말부부로 지내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황은 계속 안 좋은 쪽으로 변화한다. 반대로 전역해서 가족이 합심해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도 상황은 변한다. 여기서 어떤 쪽으로든 상황이 변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진리다. 그런데 그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아니면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부정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것인지는 두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의 몫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 사상을 떠 올린다. 영원회귀 사상의 핵심은 현재의 삶이 영원히 순환한다고 했을 때 현재 행복하냐? 는 질문을 던진다. 현재가 엄청 행복하면 현재 상태가 영원히 회귀하는 것이 좋겠지만 현재 상태가 행복하지 않다면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현재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니체가 말한 '힘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주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고정되지 않은 채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에서 주목해야 될 대목은 변화하는 삶 속에서 변화의 방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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