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서정 시인 Feb 16. 2023

81세 소녀, 치매가 무서운 우리 엄마

며칠 전 엄마를 모시고 부여치매센터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 상담 결과 인지 장애와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막상 엄마한테 치매 검사를 권유했을 당시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눈치셨다.


"야! 내 나이쯤 되면 다들 깜빡깜빡한다더라. 저 위에 영이 엄마도 가스불 켜놓고 깜빡해서 냄비를 다 태워 먹었다고 하고, 예전에 젊은 니 올케도 집에 가방을 빼 놓고 가고...."


엄마는 당신의 정신건강이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마구마구 소환했다. 당신한테 혹여라도 치매라는 무서운 질병이 찾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한번 검사받아보는 거잖는 거예요. 그리고 검사를 받아서 요양등급을 받아 놓으면 여러모로 좋아요. 지금은 엄마가 움직이실만하니까 괜찮은데 나중에 혼자 밥해드시기 힘들 때가 오면 요양서비스도 받아야 되고 하니까 의사 선생님 묻는 말씀에 솔직하게 대답만 하시면 돼요"


그래도 뭔가 미심쩍으셨는지 엄마는 검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무슨 이야기인가를 더 해야만 했다.


"엄마! 지금 엄마 연세가 있어서 살짝 인지 장애가 온 것 같아요. 그 정도는 미리 약 먹으면 치매로 발전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막상 치매라고 해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요양서비스 받으면서 집에서 지내셔도 되고, 낮에 주간보호센터에 가서 놀다 오셔도 되니까 너무 걱정 마서요. 어디 엄마 딸이 우리 소중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 버릴 사람이에요. 엄마 딸을 믿어보세요"


엄마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눈치셨다. 그렇게 불안해하는 엄마를 설득해서 검사를 받게 한 후 내가 살고 있는 대전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올라왔다. 내 방에서 같이 잠을 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가 조금은 행복해하는 눈치셨다.


그러는 사이 최근에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 사용 메뉴얼을 만들어 인쇄한 뒤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가르쳐 드렸다. 그리고 옛날에 있었던 생각은 싹 지워버리고 매일매일 오늘은 어떤 맛있는 것을 먹을까 고민해서 맛있는 음식을 챙겨 드시라고 숙제를 내 드렸다. 잘 먹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법이니까 맛있는 것을 챙겨 먹는 숙제는 꼭 해야 된다고 말씀드렸다.


모든 병이 무섭지만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치매만큼 무서운 질병도 없다. 치매는 24시간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고 잠깐잠깐 필름이 끊기는 현상처럼 찾아온다. 그래서 자기 정신이 돌아왔을 때 겪어내야 할 자괴감이 크다.


물론 엄마에게는 아직 치매가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세가 있고 홀로 시골에 살다 보니 외로움이 커져서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서둘러 예방 조치를 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랬더니 당신 때문에 애쓰는 딸이 안쓰러우셨는지


"딸! 엄마가 딸이 준 돈으로 보약 한 첩 지었다. 내가 잘 먹고 건강해야 우리 딸이 고생을 안 하지. 그러니까 엄마 걱정 말고 너 어깨 아픈 거나 치료 잘 받고 건강해라"


부모는 또 자식 걱정이 더 먼저다. 자식이 고생할까 싶어 우리 엄마는 당신 정신을 꽉 붙잡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