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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Feb 16. 2023

81세 '소녀 소녀' 블링블링 우리 엄마

며칠 전, 엄마가 우리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의 이야기다. 내 책꽂이 어디쯤에서 팔찌 하나를 발견하시고는 나에게 물었다.


"이게 뭐냐?"


"응 엄마!~ 그거 가짜야. 왜 이뻐서 탐나유?"


"응 가짜 안 같은데. 너 안 하면 내가 할까?"


엄마가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어봤다.


"엄마 맘에 들면 엄마 가지세요"


나는 방금 전에 치매 검사를 받고 나온 나뭇잎처럼 바싹 말라 거죽만 남은 엄마 팔뚝에 블링블링한 팔찌를 껴 드렸다. 이제는 어느덧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 엄마가 내가 끼워 드린 이미테이션 팔찌를 보면서 마냥 행복해하셨다.




그날 엄마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엄마가 옛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셨다.


"여기가 내가 옛날에 산에 다니다가 쉬었다 가곤 하던 곳인데, 여기쯤에 약국집이 하나 있었어.

그런데 한 번은 내가 쌍가락지를 끼고 갔었거든. 그랬더니 그 안주인이 그러더라


새댁은 어디서 좋은 반지도 얻어 꼈네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시집올 때 받은 거라고"


옛 기억 한토막을 더듬던 엄마가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사실은 그 반지 내가 장에서 사서 낀 가짜 반지였어

 그런데 가짜라고 말하기가 좀 거시기 하잖어

 그래서 시집올 때 받은 거라고 둘러댔지

 그래서 니 아버지가 광산에 다니면서 가장 먼저 나한테 사 준 것이 금반지였어

 결혼할 때 반지 하나 못 사줬다고 반지계를 들어서 사 주더라"


오랜만에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도 우리 엄마는 스무 살 때 갓 시집왔던 소녀 마음이구나!

내가 드린 가짜 블링블링한 팔찌를 보고 저렇게 좋아하시다니 ...


사람이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엄마가 또 한 번 알려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봄에는 꽃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꽃 한 다발 사서 시골집에 다녀와야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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