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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Apr 02. 2023

제네시스가 뭔가를 알았다는 의미

제네시스 X 컨버터블 콘셉트카 in 2023 서울모빌리티쇼

이번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제네시스는 별다른 미디어 콜을 하지 않았다. 워낙 2021, 2022년에 가득 쏟아냈으니 잠시 휴지기다. 하지만 부스 한가운데 이 차가 놓여 있었는데, 소규모의 프레젠테이션도 없었다는 건 아쉽다. 바로 제네시스 X 컨버터블 콘셉트다. 



루크 동커볼케의 제네시스 X, 가장 잘하는 것을 했다


로버트 드 니로를 닮은 얼굴에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언제나 블랙 슈트를 즐겨 입는 신사. 벨기에 국적이지만 페루에서 태어났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동서양 수 개 언어의 읽고 쓰고 말하기에 능한 문자 그대로의 지구행성 시민. 2016년에 처음 만난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는 전임자이자 전 직장 상사, 당시 현 직장 상사이기도 했던 피터 슈라이어와는 또 다른 느낌의 디자이너였다. 


루크 동커볼케. 실물로 보면 이렇게까지 날카로운 느낌은 아니다
2016 벤틀리 플라잉 스퍼

디자이너로서 루크 동커볼케의 이력은 럭셔리와 스포츠라는 두 갈래가 얽혀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대중적 브랜드인 슈코다, 현대차 이적 후인 2017년 선보인 코나 1세대도 디자인했지만 역시 대표작이라면  2013년 2세대 플라잉 스퍼, 2015년의 EXP 10 스피드 6 콘셉트카 등 벤틀리에서의 결과물이다. 2000년대 중반 람보르기니에서의 결과물도 있지만 그의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럭셔리 감각과 스포티 드라이빙의 감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럭셔리 GT임을 보여주는 차들이다. 


2018년 에센시아, 2021년 제네시스 X 쿠페 콘셉트를 거쳐 2022년 캘리포니아 말리부에서 공개된 제네시스 X 컨버터블 콘셉트는 루크 동커볼케가 잡은 제네시스의 방향성의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리지널로서 평가받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GT 성향의 쿠페 혹은 컨버터블이다. 이런 차는 판매량보다 브랜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공간을 공유하기보다 추가 비용을 내고서라도 독점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을 홀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에센시아 콘셉트카
제네시스 X 쿠페 콘셉트카


실물로 본 제네시스 X 컨버터블 콘셉트는 루크 동커볼케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제네시스의 오리지널로 다듬어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GT 타입 컨버터블의 정석. 외관에서 보이는 비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눈을 끈 것은 1열 대시보드였다. 전형적인 보트 타입의 아키텍처다. 루크 동커볼케뿐만 아니라 해외 럭셔리 브랜드에서 쿠페, 컨버터블, 럭셔리 세단을 디자인할 때 필수, 정석으로 여겨지는 디자인 큐(cue)다. 거기에 제네시스가 자랑하는 디지털화된 콕핏 경험을 상징하는 센터의 조작계도 돋보인다. 스티어링 휠은 카르만이나 벤틀리 헤리티지 모델 같은 느낌도 있다.




양산 결정됐다지만 과제도 한 꾸러미


차체와 휠베이스가 길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각 차축의 섀시 세팅 공간도 여유롭고 그만큼 트렁크 공간을 만드는 데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2열 구조가 조금 이상하다. 엉덩이가 묻히는 깊이는 매우 깊은데 등받이는 서 있다. 물론 이런 컨버터블의 2열이 진짜 사람을 자주 태우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지만 약간의 개선은 필요할 듯하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쿠페


크기도 크기지만 100kWh 이상의 배터리가 장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차 중량은 2.5톤을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결국 섀시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벤틀리가 높이 평가받는 것은 2톤이 넘는 컨버터블로 한 치의 오차 없는 핸들링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2년만 타면 서스펜션 부품의 고장이 잇따른다. 한 번 수리하게 되면 부품 값이 웬만한 경차 가격이다. 게다가 에어 서스펜션은 한쪽만 고장 나지 않고 대칭되는 바퀴의 부품이 꼭 ‘세트’로 말썽을 일으킨다. 


무거운 차체는 주행 중 차량이 받는 물리력을 전체적으로 증가시킨다. 콘셉트카에 제시된 글래스 타입의 하드탑 루프는 현재 현대차그룹의 기술력으로서는 무리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 현대기아의 섀시 기술력은 세단까지라 보는 게 업계의 일반적 평가다. 2017년 제네시스 G70의 개발 당시 내부에서는 쿠페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좌절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B 필러 없는 섀시의 라이드 앤 핸들링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장성이 맞지 않은 까닭이다. 




자연히 이런 문제는 수리 역량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현대차그룹 직영 서비스 및 블루핸즈가 컨버터블의 차체 특성과 고장 매뉴얼을 습득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방법은 있다. 양산 단계에서, 제네시스가 벤틀리나 메르세데스 AMG 출신 책임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해 개발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위상과 실탄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루크 동커볼케는 속도보다는 품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무리 융화력이 좋은 협업형 디자이너라지만, 그럼에도 그는 완성도에 있어서는 양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중반 잠시 사임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의 다른 경영진들과 불화했을 가능성이 불거지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벤틀리의 GT를 다듬었던 사람이다. GT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 쌓은 감각이니 적어도 이 부분에선 그가 정답에 가깝다. 


물론 현대차그룹 특히 제네시스 브랜드는 그가 필요했다. 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새 직함이 이를 증명했다. 내연기관 시대의 제네시스는 어쩔 수 없는 독일차의 패스트 팔로워일 수밖에 없었지만 전동화 시대라면 자체의 오리지널을 가져야 한다고 리더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제네시스 X 컨버터블은 ‘콘셉트’를 떼고 양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그 양산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 의견으로, 제네시스가 이 차의 양산에서 겪을 어려움을 비관의 근거로 보진 않는다. 이런 차의 양산을 결정할 때부터, 제네시스가, 현대차그룹이 드디어 뭔가를 알게 됐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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