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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May 10. 2023

카 밋(car meet)에 미치다

제의를 닮은 자동차 애호가들의 놀이터


2023 넥센 스피드웨이 모터 페스티벌’에서는 유튜브 채널 ‘신사용’이 진행한 카 밋(car meet) 행사가 참가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참관객들의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가위바위보’하나에 열중했다. 첨단의 자동차 트렌드를 주로 다루는 자동차 전문 유튜버들과 달리, ‘나의 재화’로서의 차를 즐겁게 다루는 데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호응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로컬 기반의 서브컬처, 카 밋


카 밋(car-meet)은 넓은 의미로 거의 모든 자동차 유저 혹은 애호가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카 밋을 넓게 보면 모터쇼도 그 안에 포함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애초에 태생부터 주류 자본의 자금력과 식자층, 귀족, 권력자들의 취항과 이익에 부합해 탄생한 모터쇼와는 그 출발이 다르다. 





카 밋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가 양산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넓게 보면 드래그 레이스도 일종의 카 밋인데, 그 시작을 일군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정비병들이었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버려진 활주로에서 자동차를 개조해 1/4마일, 하프 마일 경주를 즐긴 데서 드래그 레이스가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엔 SNS도 없었던 시절이니 당연히 행사 자체는 로컬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통신과 소통의 혁명이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깼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카 밋도 엄연히 로컬 문화적 성격을 지닌다. 주관 기관이 있는 모터쇼가 자동차 문화를 이야기한다면 로컬 지향의 카 밋은 그 자체로 서브컬처적 성향이 있는 것이다. 




人플루언서가 이끈다



주류 문화 행사에서도 좌장 격을 하는 기업, 주체의 존재감은, 좋게 말하면 민주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흐리다. 덜 무례하게 이야기하면 상징적이고 모호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조직위원장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카 밋에서는 행사를 이끄는 리더가 존재한다. 카 밋은 철저히 감성적이고 제의적(ritual)이다. 사람들은 그 리더에게 적극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그가 이끄는 무리의 일원인 것을 즐거워한다. 이 리더들은 대부분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이들이다. ‘신사용’ 채널도 그렇고 대기업 자본이 들어가긴 했지만 피치스(Peaches) 브랜드도 기본적으로 인플루언서에 가깝다. 


인플루언서 리더가 이끄는 모임에 철저히 ‘귀의’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잘 느낄 수 없는 소속감의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해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류 사회 초기의 역사에서 제사장이나 무녀의 존재 역시 기본적으로 지금의 인플루언서와 동일한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 스토리 메이킹을 맡길 대상


물론 사회를 이끄는 자본 권력이 서브컬처를 그냥 둘 리는 없다.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사람들을 빨리 포섭하는 데 있어 서브컬처를 신봉하는 집단을 흡수하는 것만큼 빠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MTV가 대안을 외치던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를 띄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미 자동차 기업들은 이 카 밋을 눈여겨보고 있고 이를 변주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컨텐츠화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카 밋에 참여하는 이들은 무척 자발적이다. 특히 그들의 리더가 설정한 방향에 대해 충성도가 높다. 카 밋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나누려고 한다. 그 모임과 나눔의 과정을 SNS가 됐든 영상 채널이 됐든 이야기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즐긴다. 브랜드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들이다. 현재의 소비자들은 웬만한 인사이트를 주지 않는 한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브랜드 안에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즐거워한다. 카 밋은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깃거리를 가공하는 가장 원초적인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요 자동차 및 모빌리티 연관 브랜드들은 카 밋을 직접 개최하거나 후원한다. 최근에는 주요 모터쇼나 자동차 전시회도 행사 내에 카 밋의 분위기를 녹여넣으려 한다. 


다만 한국에서 카 밋이 자체만으로 자본을 끌어들일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물론 어느 집단이든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섞여 있지만 아직 한국의 카밋 행사에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이들의 비율이 높지 않다. 미학적인 감각이나 완성도가 독보적인 것도 아니다. 



카 밋의 사회학?


하지만 다른 서브컬처 컨텐츠들과의 ‘합’이 좋다. 패션이 됐든 팝 아트가 됐든 음악이 됐든 융화가 잘 된다. 당연하다. 자동차라는 재화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그릇’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이다. 카 밋 자체로서는 생명력이 적을지 몰라도 다른 서브컬처와 결합한 형태에서의 카 밋이라면 훨씬 유망한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행사가 된다. 현재 한국의 문화 지형도를 보면, 카 밋을 지원해줄 만한 서브컬처 컨텐츠들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서브컬처 컨텐츠의 생산자들은 각자 도생 능력이 강하다. 특히 디자인 및 컨텐츠 기획 쪽에는 합당한 급여 시스템의 부조리를 거부해 자영업의 전선으로 뛰쳐나온 이들이 많다. 합리적 가격에 우수한 기획이나 디자인 역량을 자랑하는 이들이 산지 활어회 시장 생선처럼 시장에 나와 있다.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브컬처의 매력은 주류 문화가 주는 감흥보다 훨씬 감칠맛이 난다. 카밋 역시 모터쇼에 빠진 감칠맛을 채워주는 컨텐츠의 방식이자 문화다. 한국의 카 밋 문화가 갈수록 더 디테일하고 흥미로워질 것으로 기대해도 괜찮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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