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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밋(car meet)에 미치다

제의를 닮은 자동차 애호가들의 놀이터

by 휠로그


2023 넥센 스피드웨이 모터 페스티벌’에서는 유튜브 채널 ‘신사용’이 진행한 카 밋(car meet) 행사가 참가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참관객들의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가위바위보’하나에 열중했다. 첨단의 자동차 트렌드를 주로 다루는 자동차 전문 유튜버들과 달리, ‘나의 재화’로서의 차를 즐겁게 다루는 데 집중하는 그의 모습이 호응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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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반의 서브컬처, 카 밋


카 밋(car-meet)은 넓은 의미로 거의 모든 자동차 유저 혹은 애호가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카 밋을 넓게 보면 모터쇼도 그 안에 포함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애초에 태생부터 주류 자본의 자금력과 식자층, 귀족, 권력자들의 취항과 이익에 부합해 탄생한 모터쇼와는 그 출발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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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밋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가 양산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넓게 보면 드래그 레이스도 일종의 카 밋인데, 그 시작을 일군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정비병들이었다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버려진 활주로에서 자동차를 개조해 1/4마일, 하프 마일 경주를 즐긴 데서 드래그 레이스가 유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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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SNS도 없었던 시절이니 당연히 행사 자체는 로컬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통신과 소통의 혁명이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깼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카 밋도 엄연히 로컬 문화적 성격을 지닌다. 주관 기관이 있는 모터쇼가 자동차 문화를 이야기한다면 로컬 지향의 카 밋은 그 자체로 서브컬처적 성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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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플루언서가 이끈다



주류 문화 행사에서도 좌장 격을 하는 기업, 주체의 존재감은, 좋게 말하면 민주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흐리다. 덜 무례하게 이야기하면 상징적이고 모호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조직위원장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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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 밋에서는 행사를 이끄는 리더가 존재한다. 카 밋은 철저히 감성적이고 제의적(ritual)이다. 사람들은 그 리더에게 적극적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그가 이끄는 무리의 일원인 것을 즐거워한다. 이 리더들은 대부분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이들이다. ‘신사용’ 채널도 그렇고 대기업 자본이 들어가긴 했지만 피치스(Peaches) 브랜드도 기본적으로 인플루언서에 가깝다.


인플루언서 리더가 이끄는 모임에 철저히 ‘귀의’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잘 느낄 수 없는 소속감의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이해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류 사회 초기의 역사에서 제사장이나 무녀의 존재 역시 기본적으로 지금의 인플루언서와 동일한 존재였을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 스토리 메이킹을 맡길 대상


물론 사회를 이끄는 자본 권력이 서브컬처를 그냥 둘 리는 없다.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사람들을 빨리 포섭하는 데 있어 서브컬처를 신봉하는 집단을 흡수하는 것만큼 빠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MTV가 대안을 외치던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를 띄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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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동차 기업들은 이 카 밋을 눈여겨보고 있고 이를 변주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컨텐츠화하고 있기도 하다. 일단 카 밋에 참여하는 이들은 무척 자발적이다. 특히 그들의 리더가 설정한 방향에 대해 충성도가 높다. 카 밋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나누려고 한다. 그 모임과 나눔의 과정을 SNS가 됐든 영상 채널이 됐든 이야기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즐긴다. 브랜드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들이다. 현재의 소비자들은 웬만한 인사이트를 주지 않는 한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브랜드 안에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즐거워한다. 카 밋은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깃거리를 가공하는 가장 원초적인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요 자동차 및 모빌리티 연관 브랜드들은 카 밋을 직접 개최하거나 후원한다. 최근에는 주요 모터쇼나 자동차 전시회도 행사 내에 카 밋의 분위기를 녹여넣으려 한다.


다만 한국에서 카 밋이 자체만으로 자본을 끌어들일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물론 어느 집단이든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섞여 있지만 아직 한국의 카밋 행사에는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이들의 비율이 높지 않다. 미학적인 감각이나 완성도가 독보적인 것도 아니다.



카 밋의 사회학?


하지만 다른 서브컬처 컨텐츠들과의 ‘합’이 좋다. 패션이 됐든 팝 아트가 됐든 음악이 됐든 융화가 잘 된다. 당연하다. 자동차라는 재화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그릇’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이다. 카 밋 자체로서는 생명력이 적을지 몰라도 다른 서브컬처와 결합한 형태에서의 카 밋이라면 훨씬 유망한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행사가 된다. 현재 한국의 문화 지형도를 보면, 카 밋을 지원해줄 만한 서브컬처 컨텐츠들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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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브컬처 컨텐츠의 생산자들은 각자 도생 능력이 강하다. 특히 디자인 및 컨텐츠 기획 쪽에는 합당한 급여 시스템의 부조리를 거부해 자영업의 전선으로 뛰쳐나온 이들이 많다. 합리적 가격에 우수한 기획이나 디자인 역량을 자랑하는 이들이 산지 활어회 시장 생선처럼 시장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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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브컬처의 매력은 주류 문화가 주는 감흥보다 훨씬 감칠맛이 난다. 카밋 역시 모터쇼에 빠진 감칠맛을 채워주는 컨텐츠의 방식이자 문화다. 한국의 카 밋 문화가 갈수록 더 디테일하고 흥미로워질 것으로 기대해도 괜찮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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