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철야작업, 그 다음날을 생각하며
"매일같이 밤 샌 것은 마찬가지인 사장이 나오는데, 직원들은 안 나와도 되나?"
어느 대표님이 마감 후에 '전멸'한 사무실을 보고, 한 말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셨는지요. 혹자는 이 대표의 말이 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근본적으로 조직 관리역량이 떨어지는 사장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근로기준법에 의거 이미 직원들은 한계 이상의 노동을 했다는 점-이것은 '빼박' 팩트입니다-을 주목할 수도 있습니다.
이 대표는 저의 지인입니다. 실제로 제가 함께 일해보기도 한 사람입니다. 이 대표는 편집과 표지 디자이너 출신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스타'였던 사람입니다. 경쟁 PT를 수없이 거쳐도 2년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운 기업 간행물을 20여 년이 넘게 해오고 있는 매우 신화적인 인물입니다. 현재도 업무를 직접 보고 있는데, 레이아웃 잡는 감각과 일을 '쳐내는' 방식, 그리고 대다수 젊은 디자이너들이 취약한 부분인 인문 소양까지 갖춘 만능입니다. 그만큼 까다롭고 깐깐해서 직원들로서는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지만, 그런 직원들조차도 이 대표님의 능력에 대해는 배울 것이 많다고 할 정도입니다. 아 물론 그 직원도 밤샘 근무 후 전멸한 인원 중 한 사람이긴 합니다.
이 대표님이 직업인으로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마니아라는 사실입니다. 바쁜 일을 매우 좋아하고 여유 없음을 사랑하며-본인은 여유로운 것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원래 취한 사람이 자기 안 취했다고 하는 법입니다-외향적입니다. 맡은 일을 매우 꼼꼼히 하는 편인데, 그건 꼼꼼을 떠나, 자신의 손에서 시시각각 무언가가 변해간다는 그 사실을 매우 즐기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 전에 괜찮아보였던 디자인 요소가 한 시간 뒤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되어 버립니다. 완료했으면 넘기면 될 일을, 자기 만족감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더 만지느라 시간을 더 쓰는 타입입니다. 물론 클라이언트는 최종 결과물을 받을 때마다 놀랍니다. 그리고 대표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냅니다.
이 대표님에게는 몇 년 전부터 풀릴 듯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습니다. 서두에 썼듯, 바로 인력 관리입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연봉 한계점에 이르러, 혹은 결혼이나 개인신변의 변화 등을 이유로 이직 및 사직했습니다. 그 후에 들어오는 직원들은 이상하게 한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개중에는 하루만에 그만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야근하는 척 하고 짐을 모두 정리한 후 다음 날 점심시간에 사라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표님은 "별의 별 꼴과 수모를 다 겪고 있다"는 말로 탄식합니다. 그나마 현재 있는 직원들은 비교적 오래 버티며 거의 1년 가까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지각이 잦습니다. 직원들은 한 시간 늦게 퇴근해도 좋으니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미뤄 줄 것을 읍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표님은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집이 경기도인데다 야근을 하면 새벽 넘겨 막차를 타는 경우가 많은 한 직원은 30분만이라도 여유를 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대표님은 직원들이 월급 받으면서 하는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고 합니다. 열정과 자부심을 갖고 일의 중심부에 자신을 던지면 자신도 회사도 더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도 합니다. 일을 제외하고는 법적인 부분이나 세상물정에 어두워 급여를 1/13(개월)로 계산하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긴 했지만 액수로는 업계에서 결코 낮은 편이 아닌 연봉을 주는 자신의 진심을 몰라 주는 것도 때론 야속합니다. 어쩌다 퍼포먼스가 좋을 것 같은 지원자는, 뽑아놓으면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모르고 날뛰거나 대들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흐려놓기 때문에 뽑지 못하는 고충을 이야기합니다.
이 대표님은 철야 다음 날 집에서 씻고만 나와 일을 보는 중간관리자에게 애정어린 쓴소리를 던졌습니다. 기분좋게 일하고 싶다고. 이런 경우 다음 날 일하러 나오건 나오지 않건 그것은 직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있다면 나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음 과업이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대표님은 평소 말수가 적은 이 팀장급 직원이 최근 매우 지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칠 만큼의 일은 아닌데라고도 생각합니다. 적성에 맞는 업무가 아니어서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대표님은 세상에 적성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몸을 던져 일하다 보면 그 분야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은 누구도 흔들 수 없습니다. 그것을 흔들려는 사람들은 시시한 3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이 대표님의 신념입니다.
이 팀장은 원래 말수도 적지 않고 잘 웃는 사람이며 밥은 매우 천천히 즐기듯 먹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팀장을 오래 전부터 아는 지인으로서, 그가 말수가 적고 피부가 건조하고 메말랐으며, 밥은 쫓기듯 먹는 사실이 걱정스럽습니다.
최근 저는 10대 초중반 시절부터 좋아하던 헤비메틀 그룹 'D'의 라이너 노트를 의뢰받았습니다. 금액을 떠나서 우상처럼 여겨오던 밴드의 음악을, 음반사 직원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듣기 전에 즐긴다는 것 자체가, D그룹의 숨결을 직접 느끼는 듯해 벅찹니다.
그래서 정말 잘 써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죽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관성과 이별하고 'D' 그룹의 팬과, 지지난 해 그래미 노미니가 된 후 이들을 알게 된 비 마니아 팬들 모두를 만족시키고, 이들을 모르는 청자도 'D'그룹의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여 저는 저를 나누어 팀을 만들었습니다. 가사를 듣는 나, 전작과 본작을 비교하는 나, SNS 등 공식계정과 유튜브를 추적해 특이동향을 정리하는 나, 시장에서의 의미를 정리하고 파악하는 나, 각 파트의 연주를 비교하는 나 등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업무에 빠져 있습니다. '오야'와 팀원들은 한몸입니다. 그들은 깊이 연구하며 긴밀히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감각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르면 마감에 훨씬 여유있게 초고를 보내고 추가적인 이벤트 기획안까지 건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올해 안으로 독립할 예정입니다. 한 번 무릎이 꺾이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매체 발간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일을 'D' 밴드의 이번 앨범 라이너 노트를 쓰듯이 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은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이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력자들이 필요하겠죠. 문제는 조력자들이 모두 저의 분신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하나의 우주입니다. 뜻을 같이 하면 상대의 의견에 동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분신이 되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직원을 뽑겠지만 그들은 나의 분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시간은 비용이지만, 결코 비용의 산출에 있어서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서 시작하는 일에, 가장 큰 열정의 지분은 제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는 지분과 함께 책임도 지는 사람입니다. 책임에 대한 보상은 돈이면 됩니다. 내가 아닌 팀원의 비전이 내 보상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단지 그 뜻을 오래 잇고 싶은 이는 추후 동지로 받아들여 주기만 하면 그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