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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Jun 19. 2023

'i'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 없을까?

인프피의 'E'세상 살아남기

MBTI는 99학번인 제가 신입생 때, 국내에 소개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자기보고형 성격유형검사였습니다. 1학년 때 교양 심리학 과목에서 하게 된 내용이었는데, 신입생들을 매료시키기엔 충분했습니다. 고등학생을 갓 벗어난 애어른들이, 자기를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고 거기다 멋들어진 설명까지 더해지고,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니 현혹되긴 딱 좋았죠.



그런데 그 때도 교수님이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건 '심리검사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죠. 실제로 개발자 모녀의 성인'마이어-브릭스'를 따 만들어진 검사인데, 두 사람 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었습니다. 카를 융의 정신분석 이론에 근거한 분류유형학인데 어떤 경향을 이야기하는 데는 적합할지 몰라도 이걸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저는 이중전공을 심리학으로 했는데, 면접 때 지원 동기 질문에 다른 학생들이 MBTI 이야기를 했다가 당시 학과장님에게 '대학생씩이나 돼서 그런 유사과학 이야기에 혹해 있다니 공부할 자격이 없다'는 호통을 듣는 것을 보고, 저는 바로 답을 바꿨습니다. 전 뭐든 줄을 서거나 할 때 좀 늦는 편인데 여기선 득을 봤습니다. 실제로 심리학을 공부할 땐 인지(cognitive science)가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기업 면접에 쓴다고 하니 참 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얼마나 사람을 뽑는 데 있어서, 사람을 모르겠다는 고민이 크면 유사과학에 기대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입사 면접에 무속인이나 관상가, 명리학 연구가를 불러놓는 게 차라리 더 영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MBTI의 여덟 개의 심리 역동 기능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되는 영역이 바로 외향형과 내향형 즉 에너지의 방향입니다. 이는 현재 경제 트렌드 속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와 연결돼 있다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동차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입니다. 텍스트와 사진이 주력이고 영상은 부업이지만 꾸준히 하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영역은 요즘 기자 개개인이 인플루언서가 돼야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의 채널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텐션 있는 말의 향연을 이어나가느냐가 채널의 성장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플루언서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죠. 직업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속성에 가까운데, SNS가 발달하면서 이게 하나의 직군처럼 됐습니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사람도 다른 사람의 영향권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서로 영향력을 교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교유가 많고 활발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인플루언서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죠.


사실 인플루언서라는 속성은, 솔직히 닮거나 되고 싶은 무언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판이 깔리면 숨게 됩니다. MBTI를 심리학으로 취급하지 않는 정통심리학을 학부에서나마 배운 저도, 제 MBTI인 INFP가 맞다고 여기게 되는데, 바로 인플루언서들을 볼 때 드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도 유튜브를 하거나 사람들과 활발한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그런 콘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어서 흉내를 안 내 본 것은 아닌데요. 대화의 어떤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무척 어렵고 무엇보다 말을 하면서 그 정도의 흥분 상태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인프피가 'i' 중의 'i'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인플루언서가 컨텐츠 경제를 지배하는 지금은 'E'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누군가가 돈을 많이 가져가는 것이 별로 부럽진 않은데, 기회가 한 쪽으로 몰리고 다른 기회가 박탈된다면 어느 정도는 그 흐름에 편승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성향 따지게 생겼을까요. 뭐라도 해야죠.


하지만 정말, 'E' 처럼, 'E'같은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은 갈수록 요원해보입니다. 저는 대인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골프나 야구처럼, 격렬하면서도 사람과 사람은 간접적으로만 승부하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또 잘 맞는데, 지금의 콘텐츠 환경은 모두 주짓떼로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100만 구독자를 가진 이들의 텐션 넘치는 컨텐츠를 보며, 저는 도무지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기 빨리는' 느낌이 듭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런 컨텐츠를 피곤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i'는, 인플루언서가 돼, 조금 더 많은 수익을 얻는 게 아예 불가능할까요? 'ESTJ'만큼은 아니더라도  지나친 자극에 지친 이들만을 위한 틈새 시장이 있지는 않을까?'i'에 의한, 'i'를 위한, 'i'의 컨텐츠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을까? 가끔 'E'인 것이 지치는 'E'도 쉬면서 즐길 수 있는 저자극 컨텐츠가 주를 이루는 그런 플랫폼.


I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꽃사진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드로우앤드류'와 'N잡러허대리'라는 유튜버가 대담을 한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후자가 성공한 INFP 인플루언서로 나오시더군요. 그런데 이분은 INFP임에도 성공한 인플루언서라기보다 그 전에 다른 컨텐츠로도 이미 뛰어난 재능과 성과를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진심으로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유를 통해 성장하는 그런 입지적인 인플루언서가 'i'의 존재로서도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요원할 거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취재 현장에 가면 정말 끝내주는 입담과 친화력을 자랑하는 인플루언서 기자들을 볼 때면, 저들이 없는 영역을 찾아 이끼와 이슬을 마시며 살아남는 고사리처럼 퇴화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사리는 한 때 지구를 지배했던 식물이었고 지금도 살아남아 한정식집 밥상과 제삿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별다른 매개체 없이도 번식을 잘 하며 음지를 지배하는 고사리처럼, 그런 인플루언서로 성장하는 것은 꿈일까요?

i는 종교인을 하면 돈을 많이 벌 거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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