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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혹은 보관성의 발견

책, 잡지의 미래를 위한 익숙한 새 과제

by 휠로그


중고서점에 책을 팔러 왔다. 잡지는 매입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보인다. 여기서 갈수록 줄어드는 잡지의 정기구독자는 단순히 콘텐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과월호를 둘 공간이 있느냐 하는 거, 과연 얼마나 고려되고 있을까?


갈수록 주거 문제가 심각해지고 많은 사람들의 주거 면적이 줄어듦에 따라, 냉정히 말해서 책은 짐이다. 전세가, 월세로 인한 떠돎이 가속화함에 따라 대부분 사람들의 이사가 잦아지고 있다. 기본 생존요건과 관련된 물품을 제외하고 가장 큰 짐은,인정하기 괴롭지만, 책이다(아마 CD도 그럴 것이다). 실제 이사 비용도 눈에 띄게 차이난다. 그런 문제에서는 단행본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 단행본이 ISBN번호만 있다면 중고 처분이라도 가능한 데 반해, 정기간행물은 그러기가 어렵다. 플리마켓을 통한 공유는 지속적이거나 문화적으로 볼 때 그 이용자들의 범위가 제한적이다.


도떼기 시장에서 기다리다 보니 책. 특히 중고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정기간행물의 생산자와 소비자 입장 양쪽에서 몇 가지 대안적 서비스 형태가 생각나서 간단히 정리한다.


Storage Service

가재도구를 창고에 보관하는 서비스는 꽤 오래 된 사업이다. 앞으로 이 서비스 역시 모바일 환경을 활용한 스마트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스토리지 공간을 분양하는 것이다. 이렇게 책들이 모인 공간은 자연스럽게 도서관 형태가 된다. 기술적인 문제는 해당 분야가 아니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책에 원 소유주의 스마트 기기와 연결되는 식별코드를 부착해 관리 상태를 확인하는 어플리케이션도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대여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스토리지 사업자와 책의 주인이 공유하는 모델도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이 경우 스토리지 공간이 반드시 창고여야 할 필요는 없다.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한 카페와 책의 소유자-처분하긴 싫어하는-가 공간과 책을 서로 일부 교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서로를 연결하는 매칭이 앞서 언급한 어플리케이션의 하위 서비스 카테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책 혹은 판형의 대담한 변화

공간의 문제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러나 소비자와 시장 탓은 조상 탓만큼 어리석다. 좁은 공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 물리적 속성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전자책은 매거진이라면 절대 포기해선 안 될 방향이다. 손에 잡히는 재미는 매체가 다루는 필드의 인사이더와 공간적 여유가 많은 이들 그리고 책을 낳은 당사자들의 것이다. 전자책은 어찌 됐건 참담한 주거 공간을 감내해야 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어필할 수밖에 없다. 단 그 전자책의 더미와 같은 종이책 정도는 소비자들에게 상징적인 게이트로 보여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판형의 소형화는 물리적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공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가독성은 반응형의 웹사이트를 상호 보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경험의 이원화는 UX에서 독이다. 하지만 전자책과 소형화된 종이책이 내용상에서나 외형에서나 서로의 오목한 곳과 볼록한 곳을 메울 수 있다면 부정적이라 단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적극적인 리펀드(refund)

앞서 지적했듯 정기간행물은 중고서점이 쉬 매입해주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높은 할인율과 출혈 선물 경쟁에도 전반적으로 정기구독률이 떨어져가는 데는 매체의 이슈가 시기적 효용성을 잃은 뒤 '처치곤란' 상태에 놓일 것을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한 몫 할 것이다. 물론 종이는 대부분 분리 수거가 가능하고 버리는 데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정기구독물을 버릴 때 독자들은 '이러려고 이걸 샀나'하는 후회를 왕왕 느낀다. 일단 매체 종사자인 나부터도 그렇다. 소비자의 후회는 매체의 정기구독 재유치 실패로 증명된다. 대부분 매체들이 재구독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데도 말이다.


차라리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재구독 독자에게는 과월호 유상매입을 통해 상징적이고도 적극적인 리펀드를 시도하면 어떨까. 독자는 보관 문제를 해결하고 자연스럽게 할인 혜택을 얻는다. 물론 이송 비용은 모두 생산자가 부담한다. 이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한 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완판 기록을 세운 한겨레 디지털 초판은 결국 판매라는, 상품 생명유지의 전제조건에 주목한 결과였다. 부수적 비용절감이 큰 효과를 보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비용문제는, 비대하지 않은 조직으로 가뿐하게 일하는 경쟁자들의 기를 꺾고자 하는 구 조직의 견제책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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