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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Oct 15. 2023

구도 배운다면서 정작 이걸 빼놓고

렌즈의 초점거리와 조형의 관계

※저는 사진 관련 학과 전공자가 아니며, 단지 경험을 공유합니다.


사진을 처음 찍을 때, 애를 먹었던 건 무엇보다도 구도였다. 사진을 빼기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건 일차적으로, 프레임에서 가장 중심으로 담는 것과 그와 관련된 것 외에 불필요한 것은 넣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빼기의 예술이라는데

 어떻게 빼라는 건지


그런데 카메라를 처음 잡는 사람들에게는 ‘빼기’가 도통 쉽지 않다. 예컨대 거리를 걷는 사람 한 명을 촬영한다고 해보자. 거리는 스튜디오가 아니다. 차도 있고 건물도 있다. 아니 도대체,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걸 어떻게 뺀단 말인가? 전신주가 거슬린다면 한국전력공사에 이야기해야 하나? 사람이 지나다니니 경찰에 통제를 해 달라 해야 하나?


Nikon D5, Carl Zeiss Distagon 21mm, 1/20s F.2.8


많은 사진가들에게 이를 물어봤을 때 대부분은 ‘많이 찍다 보면 는다’고만 했다. 잘 찍은 작가들의 사진을 보라고도 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들이 가르쳐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렇게저렇게 하라고 한들 그것이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병아리가 부화할 때 어미닭이 한 번 껍질을 쪼아주는 그런 동기가 있긴 했다. “뷰파인더 안만 보지 말고 밖도 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해한 바, 이 말은 주 피사체의 주변을 정리해 줄 윤곽을 찾으란 이야기였다.


그건 촬영자 가까이에 있는 자동차의 지붕, 차로, 건물과 건물 사이 경계 등 다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반복되는 질서를 갖고 늘어선 물체도 괜찮다. 기하학적 패턴을 찾으란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물체들로 윤곽을 만들 수 있으면, 주 피사체 외의 물체도 방해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피사체를 돋보이게 해주는 틀이 된다. 이 틀을 통해 화제 외의 것들을 뺄 수 있게 된다.



렌즈 초점거리와

피사체배경 관계


렌즈 선택의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통상 카메라를 처음 구입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표준 초점거리라는 35㎜ 혹은 50㎜ 다. 흔히 ‘표준 화각’이라고 하지만 초점 거리가 맞다. 사실 초점거리와 화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진 블로그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서 렌즈가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생긴다. 극단의 예를 들어보자. 먼 거리를 잡는 망원렌즈는초점 거리가 보통 400~600㎜에 이른다. 대표적인 것이 야구 중계 때 투수의 등을 비추는 카메라다. 실제 아마추어들이 투수판에 처음 서보면 놀란다. 타자까지 거리인 18.44미터가 절대 짧지 않은 거리라서다. 중계화면에는 투수와 타자의 키가 대등하게 보인 것이 왜곡이란 걸 알게 된다. 즉 이렇게 초점 거리가 긴 렌즈는 ‘거리’를 압축한다.


Nikon 70-200mm


반면 초점 거리가 짧은 광각 렌즈는 가장자리 쪽의 물체가 일그러지고 가운데가 볼록하게 보이는 배럴(barrel) 디스토션이 생긴다. 특히 가장자리에 있는 물체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현상이 생기고, 단렌즈보다는 줌 렌즈에서 좀 더 심하다.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우면

구도는 따라온다


초보자가 카메라 렌즈를 선택할 때 망원이나 광각을 피하고 표준 초점 거리의 렌즈를 권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왜곡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구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표준 초점 거리라고 해도 50㎜ 렌즈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좁다. 함정도 있다. 50㎜ 렌즈의 경우 조리개 개방 정도가 크다(F 숫자값이 작음). 통상 F2.8 이하다. 초점거리와 조리개값에 대한 내용도 다른 전문 블로그에 많이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 이 경우 배경 흐림 효과(아웃포커스)가 잘 일어난다. 좁은 화각과 아웃포커스에만 맛을 들이면 사진의 다양한 재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특히 여성 모델, 새 사진 출사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오직 그대뿐’이라는 마음이야 어찌 막으랴만.

Carl Zeiss 55mm Otus


초점 거리가 짧은 광각 렌즈는 먼 지평선이나 수평선 쪽으로 갈수록 하늘과 땅이 맞붙는 느낌이 난다. 그 지평이나 수평선에 카메의 수평을 일치시키고 그 사이에 자동차나 바이크 같은 피사체를 두면, 마치 하늘과 땅 사이 먼 곳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듯한 신비함을 구현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틀을 구현하기도 좋다. 하지만 이 광각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불필요한 왜곡을 줄이려고 카메라를 위아래로 잘 들거나 내리지 않는 버릇이 생기기도 한다.



확실히 광각 렌즈에 안정성을 더해서 촬영하게 되면 광활한 자연의 느낌, 웅장한 건축물의 상승감 등을 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화각이 넓음에도 세상을 보는 상상력은 제한된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갖고 놀아야 하는데, 자연의 신도가 된다. 러다가 도 찾아 떠나는 거다.



광각, 배경과 대상의

조형적 관계 정확히 인식해야


그럼에도 광각 렌즈는 우리가 접할 일이 많다. 일단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표적. 스마트폰 사진으로 잘못찍으면 주 피사체와 배경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고 뭔가 뒤틀린 듯한 느낌이 된다. 인물의 크기, 비율이 왜곡된다거나 주변 건물이 어색하게 되는 등.


21mm 렌즈로 촬영한 사진. 배경과 차의 관계를 잘못 인식하고 카메라 높이와 각을 잘못 조절해 좌우가 불안정해졌다


사실 35㎜ 미만의 광각 렌즈는 사용하기에 따라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컷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다. 최근 패션 사진들을 보면 광각 카메라의 배럴 디스토션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인물이나 의상의 인상적인 부분을 조명한다. 이건 아무래도 비디오 시대,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긴 한데, 이걸 설명하려면  예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푼크툼(punctum)이라는 개념을 가져와야 한다.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의미를 가진 푼크툼은 단절적 순간이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 단면을 자른다. 사진가는 그래서 어떤 시점 전과 후가 가장 극명하게 맞서고 전환되는 그 날카로운 순간을 찾으려고 한다. 그 순간을 보여줌으로써, 사진을 보는 사람이 그 사진이 촬영된 전후로 연속되는 시간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즘 비디오는 순간의 연속들을 계속 보여주는데 이 푼크툼이야말로 사진이 전할 수 있는 가치다. 비디오가 푼크툼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장기라는 말이다.


거듭 나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 내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던 건 언제나 기억한다. 그나마 사진이 최소한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된 시점은 바로 렌즈로 인해 생기는 화면의 특성을 인식하게 됐을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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