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티라미수 케익을 돌리고
어제 이사를 하기 위해 월차를 냈다. 그리고 오늘 회사에 오면서 티라미수 케익을 사서 조각내 돌렸다. 직원들에게 혹시 해서 물어봤다. 이사떡 돌리면 먹을 거냐고. 직원들은 난색을 표했다. 회사 분위기 상 서로 부담스러운 것은 안 주고 안 받는다는 분위기는 있지만 그래도 떡에 대한 난색은 더 컸다.
연령대는 다양해서, 나와 같은 4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 초중반, 초반, 20대 후반까지 있다.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 입에는 떡이 안 맞지' 하는 세대론부터 찾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말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데나 세대론 찾지 말라는 거다.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 중에도 떡 환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
나는 케익도 좋아하지만 떡이 좋다. 특히 시루떡을 정말 좋아한다. 군생활 2년간을 불교 군종병으로 했고 불자라고 자부하는 나는, 사각형의 철제 찜틀이 뜨거운 김을 내뿜는 채로 불단이며 보살단, 신중단, 영단에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향 냄새 사이로 달큰한 팥의 냄새가 솟았다. 산 사람의 안녕을 비는 마음과 죽은 사람의 탈 윤회를 비는 마음이 떡 향기 속에 엉켰다.
재齋가 끝나도 온기는 여전했다. 불자 가족들과 나누어도 떡은 넉넉했다. 웬만한 떡은 가로세로 3cm 정도 두 조각만 해도 밥 반 공기가 된다. 시루떡은 팥이 있는데다 달큰해서 포만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찌는 떡의 경우, 다른 떡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시루떡은 온기가 살아 있을 때 그 쫀득함이 떡 표면의 포슬포슬한 팥 입자와 어울려 비교할 수 없는 식감을 만들어낸다. 식감이라기보다 쾌락에 가깝다. 한 입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면 건조하지만 달콤한 팥고물을, 뜨뜻하고 쫀득한 쌀떡이 와락 부둥켜안는다. 씹을수록 단맛이 강해지는데 떡의 힘이 헐거워지고 팥의 단맛이 그 안에 다 녹아들어 서로가 서로인양 허우적거리가다 목을 타고 '꿀떡' 넘어가기 직전이 가장 좋다. 넘어가고 나면 한참 그 맛을 음미하다가 그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 든다.
대단히 정의로운 분들 중 속되고 폭력적이라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성행위를 가리켜 '떡을 친다'는 말보다 아름답게 은유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음식에는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는데, 떡만큼 한국적인 에로티시즘을 잘 표현한 한국 음식이 있나? 맛과 별개로 케익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떡은 갖고 있다.
좋은 에로티시즘은 관계에 포만감을 준다. 좋은 음식이 포만감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떡은 그런 점에서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떡이 주는 포만감은, 어떤 이들에게는 반갑지 않다. 에너지 소비가 많지 않은 사무직들은 사무실에서 떡을 먹으면 체할 확률이 높다. 재택 근무자들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이유로, 코로나 이후 여러 음식의 배달 수요는 늘었는데 오히려 피자의 매출은 줄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에게 떡이 환영받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반대로 떡을 무척 반기는 이들도 있다. 특히 프로골프선수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장시간 걸어다니며 경기해야 하는 이들에게 떡은 좋은 탄수화물 공급원이다. 통상 탄수화물은 40분 정도를 걸으면 다 연소되고 그 다음부터 지방이 탄다. 그런데 운동선수들은 경기 중에 이 과정이 오면 급격한 기량 저하가 일어날 수 있다. 연료가 아니라 엔진오일이 타버리는 상황인 것이다. KLPGA에 전 경기의 우승자가 다음 대회에 떡을 돌리는 문화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떡 자체의 인기는 상승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양재동에 있는 그거 맞다)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280억 원대였던 떡류 매출량은 2019년 1,542억 원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떡 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길 바란다.
이사한 곳 근처에 오래된 떡방앗간이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떡집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명망이 높다. 해가 가기 전에 떡을 좀 해서 절에 가야겠다. 부처님 앞에서 떡을 오물거리며 고얀 상상을 하면 혀를 차실지도 모르겠지만, 떡만큼 불교에서 말하는 물아일체를 온전히 증거하는 음식도 드물다. 떡에 깃든 에로티시즘은 어쩌면 부처님 말씀과 다르지 않을 건데요, 라고 깐죽거리고 싶다. 부처님께 혼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