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순위 1, 2, 3위 XC60, S90, XC90 셋이 합쳐 66%
설 명절 모임에서 자동차는 은근한 기싸움의 아이템이자 공감대 형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화제의 대상이 볼보라면 어떨까? 2023년 기준 1만 7,018대(KAIDA 기준) 판매량을 기록한만큼 지인 중 서너 다리만 걸치면 한 대가 보일 정도. 오랜만에 모인 명절, 주차장에서 ‘어?’ 하는 집이 더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잘 나간 볼보의 2023년을 이끌었던 3대장을 소개한다.
‘중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집착은 자동차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적당히 품위 있으면서도 힙해 보이고,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나 살 정도로 싸지는 않길 바라며, 그러면서도 판매량이 많아서 자신이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걸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 간지러움을 절묘하게 해결해 주는 차가 바로 볼보의 SUV XC60다. 티맵과 볼보자동차 코리아가 함께 개발한 볼보 전용 티맵이 가장 먼저 적용된 차도 XC60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었다. 이 티맵은 현재 전 차종에 적용돼 볼보 판매량의 확대에 기여한다.
이 차의 전장은 4,710㎜로 현재 기준으로는 중형과 준중형의 경계 수준이지만 휠베이스가 2,865㎜로 길고 전폭도 1,900㎜에 달한다. 물론 도어나 외부 패널이 두터운 편이라 실내가 절대적으로 넓은 것은 아니나 볼보가 국내 시장에서 견고히 점하고 있는 안전이라는 가치와 맞물려서 큰 문제로 꼽히진 않는다.
여기에 성능도 ‘적당’하다. 2.0리터 가솔린 MHEV 엔진은 최고 출력 250ps, 최대 토크 35.7kg∙m의 B5와 300ps, 42.8kg∙m의 B6 가지 동력 사양으로 나뉜다. 4륜 구동이 공통이며 볼보의 주행 편의 및 안전 사양인 파일럿 어시스트, 시티 세이프티가 차별 없이 적용된다. 트림에서 차이가 있는 정도라면 휠 디자인, 인테리어 트림 정도인데 트림 간 차별감이 적다는 것도 장점. B5는 6,340~6,950만 원, B6는 7,350만 원이다.
전기차의 불편함을 대체하면서도 우수한 효율을 발휘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 리차지(T8)도 있다. 8,570만 원으로, 동급의 전기차와 비교하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고 오히려 전기차보다 충전에 대한 압박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결합해 2.0리터로 312ps의 출력을 내는 2.0리터 엔진과 107kW의 구동모터가 결합돼 합산 출력 455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며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 시간도 4.8초인 만큼 퍼포먼스도 아쉽지 않다.
세단의 인기가 시들하다는데 볼보는 역행하고 있다.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인데 가격 메리트가 크다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전륜 구동인 B5가 6,400~7,000만 원, 4륜 구동인 B6가 7,400만 원인데, 비슷한 체급인 제네시스의 G80보다도 낮은 가격이다. 물론 G80는 후륜 구동이지만 이 정도 급의 차량을 구매하려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구동 방식을 그렇게까지 따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전장 5,090㎜, 휠베이스 3,060㎜로 중후하게 빠진 이 차는 드라마 PPL을 통해 인지도를 크게 높인 차이기도 하다. 출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요 방송사의 드라마에 나왔고 좋은 배우들의 이미지를 후광으로 업었다. 세그먼트 상으로는 G80, BMW 5 시리즈 등과 E 세그먼트에 속한다.
4륜 구동이라도 전륜 구동 베이스다 보니 뒷좌석 공간성이 매우 우수하다. 물론 조향에 이질감이 있고,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으나 댐퍼 오르내림의 폭이 큰 서스펜션 등 약점은 있다. 하지만 시트 자체의 안락감, 볼보 특유의 미니멀하고도 고급스러운 분위기, 깔끔한 사운드의 바워스 앤 윌킨스 오디오 시스템 등 플래그십으로서 매력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
북미에서 볼보의 라인업 중 가장 잘 팔리는 차종이다. 현재 국내 시판 중인 볼보 차종 중에는 가장 고가 트림을 보유한 차종. XC90 리차지의 경우 1억 2,000만 원에 가깝다. 참고로 이 급의 강자인 제네시스 GV80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없다. 후륜에는 에어 서스펜션도 장착되고 외관에서도 21인치 휠이 적용된다. S90보다 더 플래그십의 성격이 강하다. 역시 조향이 날카롭지는 않고 다이내믹한 느낌은 부족하지만 고급스럽고 큰 SUV로 일정 이상의 ‘격’을 전하는 데 좋다.
가솔린의 경우 B6 파워트레인이 기본이다. 가솔린 모델도 시작 가격이 8,700만 원이 넘는 만큼 기본적으로 고가 차종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선택을 받았다. 볼보라는 브랜드가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만만한 가격대의 차량만 들이민 것이 아니라,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살 만한 차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들여온 덕이 컸다.
볼보라고 XC90 리차지를 내놨을 때 가격에 대한 저항과 비난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소비자와 미디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확대하는 데 몰두했고 그 성과가 지금의 결과다. ‘내 놔 봤자 비싸다고 욕만 먹는다’며 소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브랜드들은 볼보자동차코리아의 10년 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4년의 볼보는 지금 어려움을 겪는 몇몇 수입차 브랜드와 판매량이 다르지 않았다.
XC60, S90, XC90 이 세 차종의 판매량은 2023년 볼보 판매량의 66% 이상을 차지한다. 볼보의 2024년 목표는 3만 대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의미 있는 목표다. 지금까지 볼보의 성장에는 논리와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