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라는 브런치 알림이 짜증나서만은 아닙니다
"작가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드륵 하고 울리는 알람을 보고서 죄 없는 전화기 화면을 바닥으로 엎어버렸습니다. 네, 저는 꾸준하지 않습니다. 글쓰기에 관해서라면 더욱이요. 제 직업이 활자노동자인데, 집에 들어와서도 일하라는 것과 같아서 그렇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네이버 포스트나 브런치를 꽤 열심히 하려고 해봤습니다. 그런데 일터에서 머리 속에 있는 문자들을 다 쏟아내고 오니 남는 말이 없었습니다. 글쓰기 화면을 켰다가 그냥 닫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꾸준함과 재능을 등치시키는 저 말이 못내 밉고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그렇게 브런치를 방치했죠. 네이버 포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인스타그램은 열심히 했습니다. 마침 사진에도 재미를 붙였고요.
그런데 브런치를 다시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과 관련돼서입니다. 물론 강제성은 없고 활동 증명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따위 감언이설에 빠져 매주 업로드를 하는 불상사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문득 횡설수설이라도 씁니다.
그래도 브런치의 모토에 대해 납득되지 않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출판 작가의 길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겁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시는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강요당하는 요즘, 외국 거주 경험이 많으신 분들의 브런치는 여행을 넘어 생생한 현지 다큐멘터리입니다. 각 분야 전문성을 가진 작가님들의 경우에는 이런 인사이트도 가능하구나 하는 걸 생각케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재미도 지속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브런치가 메인에 올려주는 글들은 역시 시의성을 어느 정도 기반으로 할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한 겁니다. 한데 이걸 책으로 묶어서 낸다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론 책의 출판에도 시의성이 중요합니다만, 온라인만큼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프라인에 내놓을 책이라면 그 당시의 이슈성에 최소 3개월 정도는 지속 효과를 가질 내용이라야 하겠죠.
지금 브런치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글들이 과연 책으로 묶어놓고 한 3개월 뒤에 봤을 때도 살아 있을 흥미 요소를 가지고 있을까요? 좋은 사진을 갖춘 외국 경험담은 이미 여행 전문 출판사에서 잘 나와 있고 각종 인사이트 도서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역으로 그런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재료를 온라인에 맞게 다듬어서 올리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브런치가 출판 작가들을 뽑을 때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하진 않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혹시 브런치가, '작가'로 불리게 되는 다른 방법에 대한 보다 간편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이용해, 어쩌면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더 많은 산소를 만들어낼 수 있을 나무들을 베어내도록 부추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어리석네요. 브런치 글쓰기 알람을 꺼버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끄적거리고 싶은 게 있다면 하루에 서너 개도 올릴 겁니다. 그게 아니면 삼 년 뒤에 다시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덧붙여 작가라는 타이틀처럼 덧없는 것도 드뭅니다. 이건 직업도 상징적 타이틀도 아닙니다. 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전시회 한 번 하고 서로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그냥 회원이라고 해도 될 걸, 이상한 뽕이나 불어넣어가지고선. 배경과 인물 관계도 생각 안 하고 포토샵으로 피부 뽀얗게 만들고, 속옷 아슬아슬하게 보이도록 촬영한 사진을 잔뜩 인스타에 올려놓는 찍새들도 작가라고 자칭하는데, 원, 어이가 없어서 말이죠. 작가 같은 소릴 하고 있네요. 잣이나 까잡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 이렇게 하고 보니 브런치 또 하기 싫어지네요. 제가 그럴 일이 없어서 자신있게 이야기하지만 혹여라도 여기 쓴 글들로 책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까운 수목원에라도 한 번 다녀오시고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나무한테 미안한 글들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