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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가 아닌 진짜 고고학

<한국 팝의 고고학> 1980, 1990 신간을 읽어야 하는 이유

by 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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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1990저자신현준, 최지선, 김학선출판을유문화사발매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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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1980저자신현준, 최지선, 김학선출판을유문화사발매2022.05.30.



고고학은 미술사학과 형제처럼 붙어 다니는 학문입니다. 상호보완적인 학문이죠. 미술사의 본령은 정리와 복원입니다. 서지학적인 측면이 있죠. 물론 고고학역시 서지학적인 면이 있지만 고고학의 가장 주된 본령은 발굴입니다.


발굴은 그야말로 '노가다'입니다. 땅 파는 것이죠. 포크레인부터 이쑤시개까지 다양한 도구를 쓰죠. 물론 발굴장 전문인력의 지혜와 같은 소프트웨어 역시 도구라고 봐야 합니다. 쉽지 않은 신체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고고학이나 미술사학 학부생, 대학원생들을 아르바이트로 많이 고용합니다. 그들에게 고고학 발굴장은 중요한 필드워크 기회이자 용돈과 술을 얻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름 방학의 발굴장은 과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과 배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굴은 수직적인 작업만은 아닙니다. 어떤 지층을 파려고 할 때는 그 지역이라는 수평적인 조건도 고려합니다. 즉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 지층을 파 보는 것입니다. 또한 그 지층에서 나오는 유물의 의미는 시간은 물론 지역이라는 수평적 조건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 팝의 고고학> 신간을 채 읽진 않았습니다. 예전에 나왔던 1960년대, 1970년대 시리즈를 읽었고, 장안의 화제인 신간은 아직 구입 전입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에 대한 서평을 쓰긴 어렵고, 읽었다 하더라도 그런 평을 쓸 주제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들이 저의 선배이자 지인들인 관계로, 해당 책의 작업의 이뤄지는 동안 그 내용을 일부 SNS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고민의 전개 방식 등에 대해서도조금씩 엿볼 수 있었죠. 이 저자들의 작업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고고학적 발굴이었습니다. 해당 시대의 지층을 파서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을 지역성과 연결하는 작업은 음악사학이라기보다 음악고고학이라 정의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특히 제가 몰랐던 지역인 강남과 영동 등의 지역성이 해당 시대 지층이라는 수직적 조건을 들여다보는 데 어떤 조건이 되는지 흥미롭게 연결돼 있습니다.


사실 이런 방법은 그간 사회학 기반의 음악 평론에서는 잘 쓰이지 않던 방식입니다. 일찍이 쥘리앙 방다가 지적한 바 국가는 지역을 넘지 못한다는 지적은 한국 비평가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다소 도외시된 경향이 있었는데요. 역사적 질곡 속에서 지역 기반의 정치적 차별을 상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 스스로 검열을 했던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지극히 물리적인 현상을 '발굴'하면서 지역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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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이 진짜 고고학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오래된 것에 대해 고민하고 살펴보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즉 오래된 것을 보는 사람이 서 있는 물리적 시공간입니다. 고고학을 하는 사람의 시공간은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의 시공간 대비 분명한 '미래'입니다.


우리는 미래로 미리 가서 현재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고학 작업과 발굴은 어떤 역사적 시기의 '현재'를 미래의 입장에서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이는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가 볼 수 없는 미래지만, 미래의 누군가는 현재를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그 미래인의 입장을 유추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고고학의 진짜 가능성이자 특권입니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단순히 과거 음악에 대한 헌사 모음집이 아닙니다.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기준에서 비교적 근과거인 1980년대와1990년대를 다루는 작업은, 다름아니라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20~30년 뒤의 관점으로 발굴하고 합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 합리적 상상은 현재에 한국의 대중음악과 이를 낳은 물리적, 지형적 조건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판에 박힌 분석과 의미 부여가 아니라 보다현 시대 한국 대중음악의 현상을 만드는 의외의 요인들에 대한 발견과 분석까지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책은 읽기 전이지만 이 책의 진짜 의미는 이런 점이 아닐까 해서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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