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기 한소희 씨, 그 차 나이가 더 많아요”

로터스 에스프리 1988년형

by 휠로그

차를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조금 특이한 취향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희소한 차를 원하시는 분들이죠. 물론 수집 목적으로 차를 사시는 분들 대다수가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지만, 뭔가 애매한, 그 차가 전성기일 당시에도 주류라고 할 수는 없었을 그런 차를 선호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오늘 우연히 봤던 한 대의 차도 그런 차였습니다. 또한 무척 반가운 차이기도 했고요. 이 차의 ‘정체’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한소희의 럭키슈에뜨 F/W 화보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갓고리즘’님을 외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유튜브에 코오롱F&C의 F/W 화보가 떴는데요. 메인 모델인 한소희 씨 특유의 냉기 도는 아름다운 모습에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색온도를 낮춘 화면, 글리치 이펙트가 들어가 있는 화면 속에서 언제나처럼 쉴 틈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게 아니라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자신이 속한 공간의 분위기를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한소희는 배우이기 전에 훌륭한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29885052-2cc6-4ebd-8133-feeabac42f61.jpg

한소희 씨와 함께 화면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은박지를 두른 듯한 스포츠카였습니다. 차에 조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상당히 오래 된 차라는 것을 아셨을 텐데요. 지금은 저렇게 각진 디자인에 팝업식 헤드라이트를 가진 차가 없으니 말입니다.


차를 조금 더 아시는 분들은 이 차가 로터스(Lotus)의 에스프리(Esprit)란 것을 아실 텐데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저런 차가? 싶을 겁니다. 이 차는 국내의 빈티지 자동차, 클래식카 전문 기업인 ‘라라클래식’의 대표님이 소장하고 있는 자동차 중 하나입니다. 국내 최대의 튜닝, 애프터마켓 전문 전시회죠. 오토살롱위크를 가보신 분들은 거기서 라라클래식이라는 부스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2022 부산국제모터쇼에서는 이 클래식카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 EV를 선보여 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터보 에스프리, 마지막 카뷰레터 SUV

그리고 조르제토 주지아로


아무튼 이 반짝이는 로터스 에스프리는 모델인 한소희 씨보다 6살이 많은 1988년생입니다. 본격적으로 터보차저를 도입한 에스프리의 3세대(S3, 1982~)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이자 마지막 카뷰레터 방식 엔진이기도 합니다. 카뷰레터란 엔진 연소실에다 바로 필요한 만큼의 연료를 계산해서 분사하는 직분사와 달리 기계적인 열림과 닫힘의 양을 통해 연료와 공기가 섞인 혼합기 양을 조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연비는 나쁘지만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반응이 세밀하고 섬세하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카뷰레터가 기계적으로 고장나버리면 정차 중에 엔진 소리가 점점 약해지다가 시동이 ‘피융’ 하고 꺼져 버리죠. 옛날 스텔라 같은 차들을 오래 갖고 계시다가 2000년대에 와서 폐차한 분들이라면 이런 기억을 갖고 계실 겁니다.

Lotus-Esprit-S1-White-2.jpg 로터스 에스프리 1세대

라라클래식의 대표님은 2017년에 이 차를 일본 오다이바에서 국내로 들여왔다고 합니다. 이 차와, 트럭으로 유명한 이스즈 사의 피아자라는 차를 같이 갖고 오셨다고 하는데요. 조르제토 주지아로, 우리에겐 포니, 폭스바겐 골프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그 주지아로의 디자인이 각기 다른 브랜드에서 구현된 데 감동받아서 한국으로 들여오셨다고 합니다. 엄밀하게는 주지아로의 디자인이라기보다 주지아로의 오리지널을 피터 스티븐스라는 디자이너가 다듬은 것이었죠. 물론 기본 디자인의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해서 주지아로 디자인 자체라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이 피터 스티븐스는 맥라렌 F1, 로터스 엘란 M100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Lotus-Elan-Type100.jpg

흥미롭게도 일본에서 가져온 영국 브랜드 차인데 운전석은 왼쪽에 있습니다. 아마 일본에서의 소유자도 미국형 차량을 구입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게 재미있는 것이,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이나 영국차를 타는 사람들이 일부러 우측 운전석 차량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었죠. 여기에 최고의 튜닝이라 할 수 있는 조수석 튜닝(아름다운 이성을 옆에 앉히는 것)을 해서 다니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사실 일본에서의 좌측 운전석 문화에서 넘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좌측통행인 일본에서 다른 차들과 반대되는 좌석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나름의 차별화 포인트, 고급 사양이었던 거고 한국 일부 자동차 마니아, 부유층이 그런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었죠.


이 로터스 에스프리 어딘가 눈에 익지 않으신가요? 바로 영화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에 나오는 드로리언과 외형을 어느 정도 공유했습니다. 저도 언뜻 봤을 때 드로리언을 생각했는데 로터스더군요.



로터스 에스프리가 V10이라고?


차에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뭔가 또 이질적인 것을 보셨을 텐데요. 바로 왼쪽 후미등에 가까운 안쪽에 ‘V10’이라는 레터링이 있습니다. ‘뭐야 로터스에 그런 엔진이 있었어?’ 이게 이렇게 헛갈릴 수도 있는게, 1990년대에 3.5리터 V8 엔진을 장착한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아쉽게도(?) 이 V10은 그냥 레터링이고, 로터스 에스프리 S3는 2.0리터와 2.2리터의 엔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1988년형의 경우는 앞서 살펴본 대로 마지막 카뷰레터 기반의 2.2리터 가솔린 엔진이 있었는데요. 엔진이 후미에 있고 후륜 구동인, 포르쉐 911과 같은 구조의 차입니다. 확실히 수집의 가치가 있는 차입니다.


2.2리터 엔진을 장착한 에스프리는, 상대적으로 적은 배기량인데 요즘 기준으로도 상당히 강한 편인 약 260ps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2020년대, 바로 현재 동급 배기량의 차들과 다를 바 없는 5초대 초반의 0→100km/h 가속력, 240km/h의 최고 속력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의 현대 N이 2.0리터로 290ps, 혼다 시빅 타입 R이 310ps를 발휘하는 걸 감안해보면 로터스라는 브랜드의 기술력을 알 수 있습니다. 워낙 포뮬러 원 대회 참가로 다져진 기술력이 있다 보니 그러하죠.



귀여운 여인 넘어 당당한 팜므 파탈의 페르소나


럭키 슈에뜨는 한소희 씨와 이 차를 이용한 화보에서 당당하고 프로페셔널한 무드를 보여 주는 현대 여성을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예전에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은 리처드 기어가 줄리아 로버츠를 데리러 갈 때 타고 나온 차로 기억하고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a5eba271-db54-47f2-b891-d8e4536898bf.jpg

그러나 한소희라는 배우는 여타의 미인 여배우들과 달리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주인공으로 나와 본 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 비슷했던 게 <돈꽃>에서의 미혼모 역할이었는데, 그 때도 강인한 의지로 자기 아이를 키우려 하는 모습이 있었죠. 확실히 한소희라는 이름을 스타덤에 올린 <부부의 세계>에서 맡은 ‘여다경’이라는 역할 역시 소유욕과 권력욕이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f4271ecb-44e8-4ca6-af7e-8bd5ea82e366.jpg

실제 이 화보에서는 남성적인 수트를 입은 모습으로 조수석에 걸터앉은 모습도 있습니다. 이 로터스 에스프리는 줄리아 로버츠와 한소희라는, 다른 시공간의 인기 배우와 합을 맞췄을 뿐 아니라, 여성을 수동적인 애정의 대상으로 보던 시대와, 자기 삶의 강력한 중심으로 사는 시대 모두를 걸치는 ‘역사’를 쓰게 됐습니다.


이 글은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240041&memberNo=21396082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단 일부 내용과 표현은 달리 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테린이'는 '골린이' 같은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