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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린이'는 '골린이' 같은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까?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 본 잠재 고객군 가치

by 휠로그

최근 '테린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물론 '~린이'가 어린이를 차별하는 용어라는 지적 때문에 광고를 급히 수정한 제약회사도 있는데요. 사실 언어는 많이 통용될수록 그 진짜 의미나 원래 의미는 잊히기 쉬운 것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요즘 이 테린이라는 키워드가, 제가 몸담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효할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간략히 정리해봤습니다.

Maria Sharapova Siegerin Porsche Tennis Grand Prix 2014.jpeg 샤라포바가 테린이는 아니지만...

테니스, 원래 인기 있었다

테린이는 잘 아시다시피 테니스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가리킬텐데, 주로 젊은 층이 대상입니다. 물론 50~60대가 돼서 입문할 수도 있는데 왜 테린이가 젊은 층만을 가리키겠냐고 생각하실 텐데요. 사실 이런 용어, 특히 사람들의 집단을 규정하는 용어들은 마케팅적인 개념이며 마케팅과 관련 있는 이들이 시장에 뿌리는 씨앗 같은 겁니다. 즉 테니스에 입문해서 돈 쓸 준비가 될 이들을 유혹해야만 하는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떡밥 같은 것이죠. 특히 사회적 유행이나 트렌드를 직접 세팅하고 유지하고 끌어나가야 하는 패션 업계들이 이런 키워드를, 그들과 친한 미디어나 SNS, 유튜브 등의 채널로 발신하게 되는 겁니다.


테니스와 관련된 스포츠용품, 의류 품목의 인기가 갑작스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데, 1990년대 초반까지도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엘레쎄라는 브랜드가 테니스를 테마로 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들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습니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고요.

BECKER_raygiubiloarchive_000727_MH-scaled-e1622462170311-1077x1500.jpg 출처 https://courts.club/ellesse-a-style-icon-stands-the-test-of-time/

그리고 테니스 스타들의 스포츠 패션 파급력이 꽤 커요. 생각해 보시면 시대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선수들이 있었어요. 남자선수로는 1970~80년대에는 비외른 보리, 지미 코너스, 존 매켄로가 있었고 1990년대에는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 마이클 창 뭐 이런 선수들은 정말 스타였죠. 거기서 2000년대에는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그리고 이제 한국 선수 정현 이런 선수들도 있고요. 여자 선수들의 인기도 세계적이잖아요. 특히 미녀선수들이라고 불린 선수들인 1990년대 마르티나 힝기스, 2000년대 뭐 말할 것도 없이 마리아 샤라포바, 안나 쿠르니코바 등등. 특히 이런 선수들은 헐리우드 스타들과 스캔들도 많이 나오고, 매거진 패션 화보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대중들과 접점도 좋다는 얘기죠. 그래서 테니스 스타들에게 스포츠 제조사가 안기는 금액도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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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사들도 테니스 스타들을 앰배서더로 기용합니다. 포르쉐는 샤라포바를 오래 기용해 왔고, 푸조는 노박 조코비치와 인연이 깊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로저 페더러와 돈독한 관계입니다. 기아는 호주 오픈 대회 자체를 후원하기도 하고 여기에 더해 라파엘 나달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특히 호주 오픈 대회는 스폰서 비용이 저렴할 때 잡아 장기 계약을 맺은데다, 2018년 호주 오픈에서 한국 선수 정현이 4강에 오르며 짭짤한 효과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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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테니스에 입문하는 테린이들이, 골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급 소비재 산업에서 매력적인 잠재 소비자군일까요? 특히 자동차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테린이를 마케팅 화두로 걸고 승부를 보려는 패션 기업들은 '골린이'의 성장 모델을 겨누고 있습니다. 일단 골프나 테니스나 둘 다 고급 스포츠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라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팔 수 있는 '판'이 되는 겁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테니스가 약간 저평가됐으나, 테니스에도 럭셔리 바람이 불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이 되겠죠. 물론 젊은 층보다 실질적으로 돈이 있는 50~60대들도 보다 영한 룩을 소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골프의 경우는요, 통상 목금토일 경기가 열리는데, 주말 동안 KLPGA 경기 '방송조' 즉 대회 상위권 선수들이 입었던 옷은 월요일에 다 매진됩니다. 그 옷을 입었던 선수들은 20대 초반일 거 아니예요? 그런데 실제 구매하시는 분들은 그보다 연령층이 높아요.


테니스도 그런 모델이 가능할 거라고 패션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큰 회사들은 다 테니스에 뛰어들었어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골프로 인기를 끌었던 제이 린드버그의 테니스라인업 런칭했죠, 휠라도 테니스 라인업 냈고요, 코오롱의 경우 럭키 르 매치, MLB로 유명한 F&F는 이탈리아의 테니스 브랜드 세르지오 타키니를 827억 주고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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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골린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동차 업계도 테린이 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냐는 데는 좀 의문이 있습니다. 다음의 이유들 때문인데요.


1. 테니스 입문 동기 : 도심에서 즐길 수 있어서라는데?

테린이 열풍을 다룬 기사는 2021년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시국에, 실내보다 야외 레저가 인기를 얻는 상황에서 테니스도 골프처럼 주목을 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기사의 결을 읽어 보면 똑같이 고급스포츠지만 입문자들의 동기가 다르다는 게 보입니다. 자주 보이는 키워드가 '입문 장벽' '도심' 이런 것들인데, 즉 상대적으로 쉽게 접하고 어디로 멀리 안 나가도 되는 편의성이 있다는 거죠.


사실 골프가 진입 장벽이 낮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장비 구입이 비싸고 또 스크린이 아닌 야외에서 즐기려면 돈도 돈인데 이동 거리와 시간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정량적인 데이터가 무척 적은데, 그래도 테니스와 관련된 키워드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찾아 보면 대부분 걸어갈 수 있는 위치의 테니스 코트를 선호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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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테린이'(다른 기호 없음) 해시태그는 약 27만 개인데요, 첫 12개 게시물 중에 차 사진은 안 나옵니다. 하지만 115만 개의 '골린이'(다른 기호 없음) 해시태그는 첫 12개 게시물부터 바로 차 사진이 나옵니다. 하다못해 스크린 골프를 치더라도 '원정'을 가게 되면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즉 테니스 자체가 고급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를 즐기는 이들의 종합적인 구매력이 높을 순 있어도, 테니스가 자동차를 필요로 하고 자동차와 밀접한 관계를 갖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2. 실제 즐기는 사람은 2만 명 내외?

테니스 인구가 급증했다는 보도는 많지만 실제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인 자료가 부재합니다. BC카드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 테니스 관련 업종의 매출이 440%가 증가했다는데 이걸 테니스 인구 증가의 직접적 자료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테니스 의류 자체가 일상 패션으로서 범용성이 더 우수하니까 테니스 의류 매출이 늘어나서일 수도 있고요. '장비병'이라고 하죠. 테니스에 막 입문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양질의 브랜드 장비를 구입하니까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체가 인구 증가를 반영하긴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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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골프존, 프렌즈, SG 골프, 골마켓 등 시설 이용이나 물품 구매를 위해 접근하는 사람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진 골프와는 달리, 테니스는 그런 인프라가 무척 부족합니다. 2021년 테니스 협회 자료를 보면 대회 참가 아마추어를 기준으로 약 1만 4,000명이 안 되는 수준인데, 이를 근거로 약 1만 5,000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거든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설령 많다 하더라도 데이터화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추상적이에요. 의류 정도의 재화는 이 정도의 정성적 수치만으로도 계획을 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라면 이야기가 다를 겁니다.


3. 성장 지향의 골린이, 테린이는?

골프는 언제 시작해도 그 실력이 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경험이 쌓일수록 스코어를 내기에 유리하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골프를 인생에 비유합니다. 선출들이 포함돼 있는 20대를 제외하고, 통상 골프에 처음 입문하는 30대부터 보면 평균 스코어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자료이고, 미국 기준이긴 하지만 월 8회 이상 골프를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 중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에 가장 좋은 스코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즉 골프는 성장의 동기가 비교적 긴 생에 주기에 걸쳐 있어 이탈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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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테니스는 진짜 작심삼일하는 사람이 많은 스포츠입니다. 기본적으로 격한 운동이고, 빠릿빠릿한 동작을 위해 달리기도 많이 해야 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아마추어이면서도 성장하는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종목에서 어린 시절에 선수 생활을 했거나, 정말 운동 신경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람 대 사람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강한 상대를 만나면서 자꾸 지다 보면 의욕이 떨어져서 더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프야 아마추어 대회의 경우 신 페리오(New Peoria System)라는 점수 합산 시스템을 통해서 '백돌이'가 싱글을 잡을 수도 있다지만 테니스에서 급의 차이는 완전히 벽입니다. 그래서 이변이 드문 스포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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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를 잘 하려면 순발력 훈련이 필수입니다. 운동 성취욕이 높은 아마추어 입문자라면 PT까지 받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 동호회 단위로 레슨이 운영되다 보니 운동보다 친목을 즐기려고 나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도 뭐 나쁜 건 아닙니다. 어차피 운동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친목만 남고 결국 운동이 빠지게 되면 '테니스 인구'로서의 가치는 없어지는 거죠. 결국 테린이가 테니스 동호인이 못 되고 이탈하는 겁니다. 이게 시장 규모가 좀 커지려면 이탈하는 사람이 없고 새로 유입은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거죠.


테린이 대상 비즈니스, 왜 가지치기가 어려울까?

이 취미에서의 성장 지향성이라는 게, 자동차 구매에 있어서도 영향이 있어요. 골프의 성장 지향성과 자동차의 업그레이드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생애주기에 있어서도 그래요. 어찌 됐든 골프를 30대에 시작해서 40대, 50대까지 칠 수 있다는 것은 경제력이 유지되거나 더 나아진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자동차의 업그레이드도 일어나요. 골프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같이 모여서 차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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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테니스는 그렇게 성장하려면 대화하고 노가리 까서는 실력이 늘지가 않고요. 또 그렇게 실력이 늘지 않으면 이탈해요. 그러니 테니스 용품이나 패션 기업이 아니라면, 다른 브랜드가 이 집단에 빨대를 꽂기가 좀 애매해지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린이 마케팅이 자동차 시장에서도 잘 먹힐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위의 상황은 한국 시장 한정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해외에서는 굉장히 활발한 마케팅입니다. 아마 국내에 모델이 잘 안 만들어져 있다면, 글로벌 홍보 에이전시들이 외국의 모델을 갖고 와서 제안할 수도 있겠죠. 또 그게 성공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골린이를 공략하는 것만큼 확률이 높지는 않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테니스도 무척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마크 필리포시스를 정말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한국 시장이라는 조건 속에서의 테린이 마케팅은, 골린이를 지는 해로 볼 만큼 강력하고 유효하진 않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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