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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해서라도 며칠 더 있다 올 걸

5년만의 부산 출장, 맛집 발견

by 휠로그

7월 14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2022 부산국제모터쇼' 취재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별로 내키는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모터쇼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었는데 거기서 뭔가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도 싫었습니다. 더위는 별로 타지 않지만 습도가 높고 비가 올지도 몰라 챙긴 우산이 너무 거추장스러웠죠. KTX를 놓칠까봐 잠을 설친 것도 그랬습니다. 출장 전에 일을 제대로 쳐내 놓으려고 전날부터 무리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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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불만은 전시의 재미 덕분에 해결됐습니다. 마지막 체력 저하도 잘 먹으면서 해결됐습니다. 두 번째의 스트레스는 그냥 버텼습니다. 편의점에서 9,000원 주고 사온 우산인데, 이 우산이란 물건이 간절할 땐 없고 있으면 소중한 줄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과 좀 비슷한데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부산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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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터쇼 취재는 참가하는 각 제조사의 프리젠테이션과 신차 취재를 중심으로 몇 개의 단신을 쏟아내고 거기서 좀 더 깊은 함의를 담은 기획기사용의 꼭지를 찾으면 정리가 됩니다. 요즘이야 유튜브를 중심으로 움직이니 흐름은 다르지만 아직도 매체 기사로서의 방향은 비슷하죠. 다르고자 하는 마음과 방식까지도 비슷할지 모릅니다. 직종의 종 특이성이 만드는 보편성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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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취재를 진행하고 기사를 정리해놓고 보니 밥 먹을 때를 놓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면 뭔가 진짜 괜찮은 걸 먹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때를 놓쳐서 헛배가 부른 느낌만 들기 때문이죠. 물과 커피를 많이 마신 것도 이유입니다.


기왕 부산에 왔는데 밀면이나 돼지국밥을 떠올리실 법하지만, 후텁지근한 날씨에 뭔가 산뜻하고 가벼운 것이 간절했습니다. 마침 7월 말, 한 자동차 브랜드의 시승 행사가 있을 장소 사전 답사를 해보느라 택시로 10분 정도 떨어진 민락 수변공원 쪽으로 향했습니다. 행사장으로 쓰일 곳은 새로 문을 여는 '밀락 더 마켓(Millac the Market)'입니다. 부산권에서는 더 베이 101을 포함해 요식업 재벌인 키친 보리에의 또 다른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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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서울의 이케아 성수점 같은 외벽 분위기가 인상적인 요식업+복합문화공간입니다. 15일이 오픈 예정이었으니까 지금은 열었겠죠?


통상 이런 쇼핑몰 바로 인근에는 좋은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을 포함한 야간 뷰가 예쁠 것 같은데 그걸 내려다보며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까페가 있겠거니 싶었죠. 그리고 피크닉 인 파리(Picnic in Paris)라는 2층의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파스타도 있고 피자도 있는 그런 집인데 오후 4시쯤이라 간단하게 안주와 함께 먹을 것을 사장님께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날도 더워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이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한 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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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양이 엄청 많습니다. 치즈는 짜지 않고 담백했고 토마토의 상태가 무척 신선했습니다. 다른 재료들이 기본적으로 촉촉한 것들이었는데 올리브는 건 올리브여서 뭔가 액센트가 느껴졌습니다.


사실 음식이나 요리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어서 메뉴 이름을 못 외웠습니다. 그러나 호밀 바게뜨와 곁들여 먹는 맛이 훌륭했고 무엇보다 한 끼 식사로도 든든했습니다.


저는 에일 맥주를 좋아하는데요. 처음 마셔 본 에일인 란 볼랑 아네스티지 앰브르(L'âne Volant Ânesthésie Ambrée)라는 맥주입니다. 이름이나 빛깔로 봐서는 앰버 에일의 한 종류인 것 같습니다. 330ml짜리고 도수는 5.5도입니다. 더운데 많이 돌아다녀서인지 한 잔을 마시니 뭔가 찌르르 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있더군요. 통상 술이 들어가면 감각이 무뎌지는데, 이건 반대로 모든 감각을 열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식 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2021년 말에 국내에 들어온 맥주인데, 마신다면 반드시 병으로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일은 구스아일랜드를 제외하면 병제품보다 캔 제품에서 특유의 이상한 비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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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온 손님이 불쌍해 보였는지 서비스를 주셨습니다! 살짝 구운 빵 위에 레몬 마멀레이드, 그 위에 염소 치즈와 토마토가 올라간 요리입니다. 역시 이름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맥주와 기가 막히게 어울립니다. 이 메뉴가 있는 걸 알았다면 이걸 시켰을 겁니다. 영양균형도 좋습니다. 뭔가 무화과향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 입에 나눠 먹었는데요. 레시피 자체는 집에서도 시도해볼 만한 것이라 나중에 해먹어 봐야겠습니다. 무화과나 건포도가 들어가도 괜찮겠네요.


이렇게 먹고 나오니 해는 좀 더 기울어 있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이 지역에 저녁 햇살이 들이칠 때 사진을 좀 더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일 때문에 급한 휴가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밀린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회사 일은 제게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자릴 비우면 뭔가 꼭 일이 있고 대표님이 저를 찾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 7년 가까이 몸담았는데 여름 휴가를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심지어 대표님도 가는 휴가를 말이죠. 이 음식의 맛은 그렇게 간절한 휴식의 맛보기처럼 짜릿했습니다. 막상 쉬라면 잘 못 쉴 거예요.


※ 부산모터쇼 이야기는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142816&memberNo=21396082 여기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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