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다시 하는 사람의 관점
직업적 특성상 네이버 포스트와 브런치 그리고 카카오 하모니라는 플랫폼까지 모두 경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개발자는 아니었고 콘텐츠 제작자로, 기업들이 사용하는 게 어떤 플랫폼인지에 맞춰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포스트와는 달리 브런치와는 한동안 멀어졌습니다. 아무래도 플랫폼 자체의 파급력이 다르다 보니 기업들이 선호하는 것도 있었고, 거의 네이버 포스트에 올리는 글들을 그대로 재탕하거나 제목만 '우라까이'하는 것도 많아서 관심이 크게 가진 않았습니다.
제작자로서는 아직도 약간 불편한 것은 있습니다. 저작권 고민 없이 기사나 영상의 링크를 보여 줄 수 있는 글감 첨부 기능 등이 브런치에 없는 것은 좀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여기는 텍스트의 가능성으로 끝장을 보자는 건가보다 하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이 브런치 계정을 일 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부정기적으로나마 계속 올리고 있으니 그만큼의 관심은 생겼다고 하겠습니다. 애정은 아니고요. 텍스트 쓰기가 주 노동인데, 그 외 시간에까지 이걸 취미로 할 만큼 글쓰길 좋아하진 않습니다.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려다 도로 떠나려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브런치는 PC 버전의 시작 화면이 매우 감성적이고 멋있죠. 처음엔 다들 사진이나 이미지들도 얼마나 잘들 만드시는지 흐릿하게 아웃포커스된 그림 위에 떠 있는 제목들의 향연을 보면 눈이 호강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목도 클릭을 불렀고요, 그래서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급격히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사로잡는 단어 '퇴사.' 그러고 보니 브런치엔 퇴사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정말 많더군요. 퇴사를 얼마나 트렌디하게 결심하고, 폼 나게 실행하며, 퇴사 후의 일상을 얼마나 창의적인 모습으로 올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내용의 콘텐츠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직장인이고 퇴사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보니까(40대) 뭔가 긍정적인 뉘앙스의 키워드에 에너지를 얻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우울과 어둠이 주는 신비한 매력에 쾌락을 느꼈다면, 지금은 밝은 햇살, 여행, 자동차, 물건 등 경제력에 기반한 풍요의 이야기가 좋게 다가옵니다. 속물이죠.
퇴사를 이야기하는 작가님들은 다들 문장력도 얼마나 좋으신지, 그 흡인력 있는 문장을 제 발로 스스로 따라가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 축축하고 어두운 구덩이 속으로, 제 발로 따라간 것 같아서 힘이 빠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주제를 피해 주로 IT나 브랜딩, 요리와 관련된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구독 중입니다. 물론 퇴사를 말씀하시는 작가님들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사실 브런치에는 퇴사와 관련된 텍스트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경제적 자유라는 메시지가 디지털 콘텐츠 영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내세우고 이를 통해 자신을 브랜딩해 월급을 주는 회사의 노예로 살지 말자는 열풍은 유튜브를 통해 구체화됐는데요. 하지만 유튜브는 생각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채널의 스피커나 진행자로서 성공하려면 '관종'기질이 있어야 하고 기획자나 촬영자로 성공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 비해 브런치는 상대적으로 저자본 도구인 텍스트 기반입니다. 텍스트는 유튜브의 영상처럼 직관적이지 않기에 파급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살아남아 있습니다. 특히 '검색'이라는 행동에 유리하죠.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언어를 감지하는 그물에 걸리는 겁니다. 거기에 인사이트와 '하우투(how to)'가 있으면 포털이 메인 페이지에 띄워 주기도 하고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안을 하기도 하죠. <무자본으로 부의 추월차선 만들기>(송숙희 저)라는 책은 텍스트 기반 창작 플랫폼의 이런 성격과 이를 이용하려는 이들의 니즈를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책입니다. 방송작가 출신답게 눈에 띄게 주제를 배열하는 방법도 아시고요. 다른 브랜드의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이 책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해당 브랜드 콘텐츠가 오래 쓸모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 정말 도움이 되더군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주로 퇴사라는 키워드를 가진 콘텐츠들은 낮에 올라오거나 조회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정량적인 데이터를 돌려보진 않았지만 제가 주로 회사에 있을 때 브런치를 가끔 열어보니까-브런치를 활용하는 브랜드가 있고 그걸 대행해 콘테츠를 제작하기도 합니다-빈도가 높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걸까요? 다들 스트레스 가득하고 짜증나는 답답한 시간대에 한 번씩 클릭해보시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브런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많으니까 변명하실 거리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뭐라고 건방지게 다른 분들의 콘텐츠가 이러니 저러니 하겠습니까. 다만 퇴사라는 말이 이렇게 주목받는 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절박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몇 년 전에 미디어 간담회에서, '앞으론 다들 유튜브나 파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왔는데, 그건 현실이 됐습니다. 다만 유튜브만 땅이 아니고 텍스트 기반의 땅도 있다, 그리고 결국 유튜브의 영상 콘텐츠들 중에도 텍스트를 잘 다루는 사람의 상상력과 기획력, 인사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실제로 저는 영상 제작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는데 의외로 텍스트가 필요한 경우가 많더군요. 여하튼 굶어죽으란 복은 없나봅니다.
퇴사를 하시든 안 하시든 모두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아 또 퇴사 글이야'라며 싫어했는데 퇴사 테마의 작가님들께 송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