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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Oct 10. 2022

On the Ground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EV6 GT 체험

프루빙 그라운드(Proving Ground)라고 하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나 타이어 제조사들이 제품 개발을 위해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는 시험장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자동차 경주장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포장된 서킷 형태의 도로만이 아니라 물웅덩이, 오프로드, 파쇄석, 급경사로 등 거의 모든 유형의 조건이 갖춰진 곳입니다. 



불모지일수록 더 좋은 입지, 프루빙 그라운드



좀 독특한 곳으로는 프랑스 라 페흐떼 지역에 있는 구 PSA 그룹의 주행시험장이 있습니다. 원래 2차 세계대전 당시, 앙드레 시트로엥이 나치에게 차량과 기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숨긴 곳이기도 한데, 강남구만한 면적에 채 800명도 살지 않는 곳이고 전체가 밀밭입니다. 그 밀밭 한가운데 숨겨져있다시피 한 숲 속 고성과 그 주변 화강암 블럭으로 만든 도로가 시트로엥의 프루빙 그라운드입니다. 물론 소쇼 등 다른 지역에 첨단 시설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이곳에서 험로 주행 감각 등을 다듬곤 합니다. 


태안 자체는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여기도 프루빙 그라운드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불모지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태안 반도 자체는 관광지이지만 엄밀히 이 쪽은 내륙 쪽을 바라보고 있는 태안반도의 동남쪽입니다. 주요 관광지와는 좀 떨어져 있어서 식당가도 마땅치 않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만들어진 갯벌 지대이므로 지반 자체가 무르고 약해서 상업 시설이나 고층 건물이 올라가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수도권보다도 황사와 미세먼지 영향을 더 크게 받다 보니 특별히 주거 단지로 자리잡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조건을 활용해 태안군은 여기에 기업도시를 조성하고 R&D 센터를 유치하고 있죠. 



자동차 개발 과정을 레저의 현장으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남자라면 상당수가 꿔 보는 꿈이 있습니다. 파일럿과 자동차 제조사의 연구원이죠. 하지만 둘 다 수학을 참 잘 해야 합니다. 여기서 나가떨어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영화와 포뮬러 원으로 대리만족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개중에는 인제스피디움 같은 서킷 주행을 즐기기도 하죠.  


그런데 현대가 이러한 자동차 개발의 장인 프루빙 그라운드를 대중에게 열었습니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례화, 세분화된 프로그램을 갖추고 일반 고객들을 맞이하는 겁니다. 미래모빌리티의 기술을 일상으로 가져온다는 현대차그룹의 목표가 담긴 공간이기도 한 것이죠. 



현대와 기아, 제네시스의 주요 라인업 및 전기차 등 다양한 차종이 있고, 도로의 유형에 따라서도 마른 노면과 젖은 노면 서킷, 드래그 레이스, 드리프트 등 여러 가지 체험을 상품화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이용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각 브랜드 및 레벨 별로 세션이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수업 시간이 긴 고급 프로그램은 55만 원까지도 가지만 인제나 영암에서의 15분 주행 이상으로 상세하고 아카데믹한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물론 프루빙 그라운드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제조사로서 현대가 처음은 아닙니다. BMW나 폭스바겐AG 등이 프루빙 그라운드를 기반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혼다도 스즈카 서킷이나 모테기 트윈 링 등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레저나 교육 목적의 드라이빙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죠. 하지만 후발 주자인만큼 오히려 프로그램 자체를 정교화하고, 한국 고객들이 찾을 만한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건 장점이죠.




‘속도’는 내 적성이 아닌가봐


저는 지난 10월 6일, 기아 EV6 GT 체험 행사를 통해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방문하고 체험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험로를 제외하고, 프루빙 그라운드의 전 조건을 활용해 EV6 GT의 여러 가지 면모를 모두 체험해보고 전하는 미디어 행사인데요. EV6 GT는 쉽게 말하면 EV6의 고성능 버전입니다. 합산출력이 430kW 환산하면 585ps에 달하고 최대 토크가 740Nm(75.5kg∙m)에 달합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치냐면 S가 붙지 않는 메르세데스 AMG의 63을 능가하는 수치입니다. 최대토크만 보면 포르쉐의 괴물인 991.2 GT2 RS보다 불과 1kg∙m 적은 수준입니다. 4.0리터 트윈터보 엔진급이라는 것이죠. 기아 측에서는 초기부터 최대 토크가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전기차의 특성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80~100%로 점진적인 토크 발휘가 가능하도록 설정했다고 합니다.



서킷 주행을 할 때, 보통은 선도 차량이 있고 이번 행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전문 레이서나 연구원으로 구성된 인스트럭터진이 인도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운전자의 실력이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마른 노면 서킷(Dry Handling Circuit) 주행에서부터 4랩을 채 넘기지 못하고, 비상등을 켜고 피트인했습니다. 최고 속력을 경험하는 고속주회로 주행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경험해본 최대 속력은 210km 였고 그 이상 속력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속도에 대한 감각과 실력이 부족해서 폐를 끼치기 싫다고 인스트럭터들에게 말하고 직접주행 세션에서는 빠졌습니다. 대신 패닝 샷을 건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탈 때는 어려워도 패닝 샷을 촬영할 때는 차량의 속도가 빠른 것이 편합니다. 그러면 빠른 셔터스피드를 선택할 수 있고 조리개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스트럭터들이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고성능 전기차의 경우 속도에 대한 감각을 잡기 어렵다고는 했습니다. 모두들 신나게 속력을 올리는데, 저는 속도도 무섭고 그 속도에서 선행 차량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싫더군요. 20년 넘게 운전하면서, 고속 주행 시에는 주행 속력 숫자에 미터를 붙인 만큼 차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철칙을 어긴 적이 없어서 그런지 평소에 느린 차를 타서 그런지 속력에 적응을 못했습니다. 




Everything You need is On the Ground


하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됐을까요? 기아가 마련한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에서의 EV6 GT 체험은 업무를 넘어서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다양한 물리력 조건에서 차가 어느 정도로 버텨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차의 가치를 경험하는 또 한 가지 방식이자 간접적인 안전운전 교육이기도 합니다. 특히 젖은 노면에서의 핸들링 특성을 보는 드리프트는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마찰력이 극히 낮은 도로에서 어떯게 상황을 탈춣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임기응변력 교육이기도 합니다.  



또한 운전자로서 도로에 대해 가져야 할 겸허함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제아무리 ‘달리기 번개’에서 날고 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문 레이서인 인스트럭터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새 1랩 차이갈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에서의 경험을 축약할 문장을 떠올리는데 로제(Rosé)의 “On the Ground”의 한 구절 “Everything I need is on the ground(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내게 있어)”였습니다. 사실 영어 표현에서 지극히 현세 긍정적인 이 관용구는 ‘on the ground’보다는 ‘on earth’로 쓰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 느낌은 ‘on the ground’ 쪽이네요. ‘earth’가 너무 큰 개념이라서 그럴까요? 



EV6 GT를 통해 경험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의 프로그램은 단순히 자동차만이 아니라 자동차와 도로가 맺는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미를 망라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자동차 연구자들은 이러한 프루빙 그라운드를 섀시만 있는 자동차라든가 프로토타입 등을 타고 테스트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감내합니다. 그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온전히 ‘상품화’한 것이 바로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길을 달리는 모든 즐거움을 한 곳에서 종합적으로 느끼고 싶다면, 꼭 한 번은 찾아봐야 할 프로그램입니다. 


※ 이 글은 어떤 후원도 받지 않았으며 주관적일수밖에 없는 경험을 최대한 보편적인 근거와 연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후원은 절대적으로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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