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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Nov 15. 2022

평범의 끝, 로망의 시작
현대 그랜져와 혼다 어코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교 대상이었습니다만

“어릴 적부터 저의 로망은 어코드였습니다.” 2016년 현대에서 진행했던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한 참가자가 했던 말입니다. 현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걸 멘토와 함께 실현시키는 좋은 프로그램이었고, 당시는 폐쇄적이었던 기업 문화와 불통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네이버 포스트 ‘뷰H(VIEW_H)’를 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취지의 행사였어도, 현대차 임직원들 앞에서 그 고객이 그런 말을 쉽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좋은 차가 현대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진심의 발로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다른 길 가던 차인데 왜 비교됐을까?

인간의 '로망'이라는 공통점


2022년 11월, 혼다는 11세대 어코드를 공개했고, 현대가 7세대 그랜져를 출시했습니다. 어코드의 역사는 46년, 그랜져의 역사는 36년입니다. 글로벌 위상은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어코드는 기록 제조기입니다. 북미에서 최초 생산한 타국 브랜드 자동차를 비롯해 북미 올해의 차 타이틀도 여러 번 차지했습니다. 최초의 SRS 에어백, 최초의 내장형 내비게이션, FF 레이아웃 최초의 전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적용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독할 정도의 자체 기술 고집의 결과입니다. 물론 전동화와 관련해서 독자적인 플랜이 조금 뒤처지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인터브랜드 기준응로 현대보다 14계단 높은 21위에 랭크된 종합 모빌리티 기업이기도 합니다. 


북미에서 생산된 최초의 해외 브랜드 차종, 혼다 어코드



현대 그랜져는 전륜 구동 레이아웃에서의 플래그십을 지향합니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 규모로 국산차와 수입차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난센스지만 고급차 영역은 유망 수요자들이 겹치므로 부분적이나마 비교가 가능합니다. 그랜져는 2019년 출시된 IG의 페이스리프트 이후로 첨단 편의 기술 중심의 차별화를 기합니다. 세대교체마다 파워트레인에 손을 대는 방식보다 디자인과 편의성에 집중했는데 이것이 수입차의 엔트리 트림 혹은 옵션이 부족한 레전더리 모델들을 선택하려던 수요자들의 걸음을 돌려세웠습니다. ‘그 차 좋습니다, 하지만 그랜져가 더 크고 편합니다’라는 전략이었죠. 디자인에 대한 논란은 많았지만, 정작 그런 이야기들은 실수요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신형 그랜져가 아무리 눌린 스타리아라고 욕해 보십시오. 그랜져를 사신 분들에게는 마냥 사랑스럽기만 할 겁니다. 그랜져라는 이름 자체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로망’이기 때문입니다. 


'풀체인지급 페이스리프트'를 외쳤던 6세대 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


바로 이 지점입니다. 두 차 다 한국 사회에서 ‘로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에, 이 두 차를 사이에 놓고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겁니다. 로망은 원래 ‘로마적인 것’을 뜻하는 'romanus', 'romaine’ 등의 라틴어나 프랑스어를 일본이 비슷한 발음의 '낭만(浪漫)’으로 음차한 데서 왔습니다. 유럽 문화사에서 ‘로마적인 것’은 ‘고대 그리스적인 것’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됐는데요. 고대 그리스적인 것은 신과 영웅을 다룬 신화적 가치라면 로마적인 것은 인간 자체를 인정한다는 가치입니다. 



혼다 어코드나 현대 그랜져의 위치가 그렇습니다. 신계(神界)에 있는 어마어마한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지만 인간의 영역에서 이룰 수 있는 숭고하고 멋진 경지, 그런 걸 원하고 삶의 모토로 삼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차죠. 혼다는 그것을 집요한 기술로, 현대는 화려함과 편의를 통해서 구현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틀린 선택은 없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논란, 사실일까?


공교롭게도 혼다의 11세대 어코드와 현대 7세대 그랜져 모두 디자인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습니다. 어코드는 너무 밋밋해졌고, 그랜져의 경우는 미니밴 ‘스타리아’의 ‘프레스 에디션’으로 불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두 차 모두 주력 소비자들에게는 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랜져의 경우 사전 대기 고객이 1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어코드 역시 흥행 보증수표입니다.


사실 디자인에 대한 논란은 자동차 고관여자들의 의견입니다. 이들은 포털 사이트 및 유튜브 콘텐츠 및 댓글에서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자극성이야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 세계는 그런 자극성에 잠깐은 영향받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 중간선거가 보여줬죠. 


그랜져의 디자인은 분명 스타리아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스타리아가 아무리 승용의 성격을 강화했어도 상용차 성격이 강했던 스타렉스의 후예인데, 플래그십 세단인 그랜져가 이 차와 비슷한 디자인 큐를 갖고 있는 것이 미학적으로 좋지 않은 수라는 지적입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제조사에서 밴과 세단이 디자인 요소를 공유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두 차 간의 이런 디자인적 친연성 역시 세간의 의견이지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밝힌 이야기도 아니죠. 



물론 신형 그랜져 디자인의 각 요소 간 연결이 어색하다는 지적은 일리 있고 타당합니다만, 상용차와 닮아서 못생겼다는 지적은 아직도 화이트칼라 사무직을 높이 보고 상업이나 몸 쓰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천시하는 시각과도 닿아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땀 흘려 일하시는 기술직 근로자들 중에 화이트칼라는 우스울 정도로 고소득을 올리시는 분들 수두룩합니다.


어코드의 디자인은 북미 <카 앤 드라이버(Car And Driver)> 매거진의 경우 ‘가장 멋진 어코드(The Best-Looking Accord Ever)’라는 문구를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전통적으로 혼다 차종들에 대해 평이 좋은 매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로서 라이드 앤 핸들링의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이상과 가치에 맞는 디자인을 택했으며, 실내 역시 제조사의 역량 과시가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을 택했다는 게 논지입니다. 특히 외관 디자인에서 반듯하게 닦아놓은 듯한 면은, 충분히 훌륭했던 10세대 어코드 이상의 공력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K8로 간 본 그랜져

파워트레인 탐구 멈추지 않는 어코드


파워트레인에서 그랜져는 나름대로 큰 교체가 있었습니다. 2.5리터 가솔린 엔진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 라인업 교체입니다. 3.3 GDI는 최고 출력 300ps, 최대 토크 36.6kg∙m의 3.5리터 가솔린 엔진으로 바뀌었고, 2.4리터 앳킨슨 사이클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는 1.6리터 가솔린 터보 기반 하이브리드로 바뀌었습니다. 출력과 효율 면에서 싼타페까지 굴릴 수 있을 정도로 검증된 파워트레인이죠. 그리고 3.0리터 LPi도 3.5리터 LPi로 교체됐습니다. 


하지만 이 엔진들의 테스트는 기아 K8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준대형급 세단에 1.6리터 하이브리드를 얹는다는 것에 대한 고객들의 저항 심리를 K8이 충분히 완화해줬습니다. 엔진오일 증가에 대한 이슈도 먼저 맞아 준 격이 됐습니다. 그래도 그랜져라면 파워트레인에서 뭔가 다른 ‘한칼’이 있길 바라는 건 사치일까요? 싼타페, 기아 쏘렌토 등 전륜 구동 플랫폼에 적용됐던 280ps 대 2.5 가솔린 터보라도 들어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파워트레인보다는 그랜져의 상징성과 편의 사양으로 승부하겠다는 모습을 너무 대놓고 보여주는 게 최고 세단을 내놓는 애티튜드로선 부족하지 않은가 합니다. 올 초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에 적용됐던 세밀한 변화는 정말 칭찬할 만한 것이었는데, 그런 가치가 플래그십 세단의 파워트레인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아쉽습니다.



11세대 어코드의 파워트레인도 겉보기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여전히 파워트레인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최고 출력이 약 10ps 줄었지만 최대 토크 발휘 범위가 최대 8,000rpm까지 확장됐습니다. 극강의 연비를 자랑하는 혼다의 2 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과 모터의 연결, 분리는 담당하는 록업 클러치를 하나 더해, 저속 영역에서의 발진 가속과 효율성을 개선했습니다.



섀시에는 혼다의 섀시 공법인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의 최신 버전이 적용됩니다. 교통안전국(NHSTA)의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 및 고속도로손해보험협회(IIHS)의 새로운 측면 충돌 기준인 ‘Side Impact Crashworthiness Evaluation (SICE) 2.0’를 충족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섀시 강성 강화와 트랙(바퀴 폭)이 0.4인치(약 10.16㎜) 넓어짐에 따라 영향받을 수 있는 전륜 쇼크 업소버와 베어링의 세밀한 개선을 통해 마찰력을 조절한 것도 돋보입니다. 사실 혼다가 새 세대의 차량을 내놓을 때마다 가장 공을 들이고 대외적으로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혼다는 반세기를 바라보고 그랜져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맥을 이어왔습니다. 한국 자동차도 빨리 발전했고 그랜져는 그 흐름을 선두에서 견인해온 차입니다. 이젠 거의 세그먼트가 달라지다 보니 어코드와 그랜져를 놓고 비교하는 소비자는 거의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어코드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랜져는 고급차를 지향하니 누군가의 로망이 되는 건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어코드는 혼다 소이치로의 철학대로 누구나 쓰기 편하고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주행의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는 차를 지향했습니다. 그런 차가 ‘로망’의 위치를 그 오랜 세월 누린다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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