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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Jan 29. 2023

동양적 이미지의 대표는 일본일까

부가티 미스트랄, 일본 프리미어 이미지

부가티는 부의 문화가 오래 축적된 세계 명소를 찾아 초 럭셔리 로드스터 미스트랄(Mistral)을 기념하는 이미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8.0리터(7,993cc), 뱅크각 90º의 W16 엔진을 장착한 마지막 로드스터이자 99대 한정판 자동차인  7단 DCT와 맞물린 이 파워트레인은 시론의 것으로, 부가티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파워 유닛이자, 새 시대를 향한 부가팀의 꿈이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일본이다. 과거보다 분명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부의 축적 역사가 긴 부자들이 존재하며 특히 부 안에 명문으로서의 기품을 유지한 가문도 적지 않다.



간다 신사도쿄도 치요다 구


부가티가 선택한 첫 스팟은, 도쿄도 23개 구 중 가장 땅값 비싼 치요다 구의 칸다 신사 정문 앞이다. 칸다 묘진(神田明神)이라고도 불리지만 묘진(明神)은 보통 신령을 가리킨다. 칸다 신사의 주신은 10세기 무렵 천황에게 반기를 들고 스스로 신을 자처한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혼령이다. 지금이야 일왕의 거주지가 도쿄의 황궁이나, 오랫동안 천황가의 정체성이 뿌리내린 지역은 교토를 포함한 간사이였다. 다이라노의 반란은 일본 역사 시작 후 천 년 이상 부귀를 누려 온 일본 황족과 귀족에 대한 반기였다. 다이라노의 목을 지역 주민들이 수습하고, 이미 그 전부터 존재하며 많은 신을 모셨던 간다 신사의 주신으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다. 



도쿄의 역사는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 시대 시작과 함께 막을 올렸다. 치요다구는 에도 성의 영역과 일치한다. 즉 치요다구는 현재 도쿄도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간다 신사에 모신 또 다른 신인 칠복신은 상인들을 살피는 신이어서 많은 상인들이 이곳에 들렀다. 치요다 구가 일본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것도 이 덕분이다. 그러나 상주 인구는 적다. 한국으로 치면 명동 같은 곳. 칸다 신사 앞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그라데이션이 풍부한 붉은 빛 속에 물들지 않은 미스트랄의 모습도 신적이다. 참고로 칸다 신사 자체의 건축적 의미는 전통보다, 현대적 복원기술에 있다. 잦은 지진과 화재, 재난으로 최근까지도 수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오이시 공원, 카와구치 호


후지산 인근 가와구치 호수 주변 공원 중, 후지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 오이시 공원이다. 일정에 맞춰서 선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를 선택한 것 치고는 시기를 잘못 골랐다. 여기도 홋카이도만큼 라벤더 명소다. 일본인들의 라벤더 사랑은 각별한데 풍경 좋은 곳이면 어디든 라벤더를 빼곡하게 심고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극동아시아 3국의 산수화 중 채색 산수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일본이다. 자연을 화폭삼아, 채색하듯 식재를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어 레버의 댄싱 엘리펀트(dancing elephant). 창업주 에토레 부가티의 동생이자 조각가 렘브란트 부가티의 디자인


시간적 배경은 해가 지는 시간. 상당한 로우 앵글에서 탑승 공간을 찍어도 호수 수면이 나온다. 그만큼 낮은 차체를 실감할 수 있다. 여기서는 X자 테마의 테일 램프 디자인과 엔진 위를 지나가는 구조물을 모습을 후지산 배경에 옮겨냈다. 특히 엔진 룸 윗부분을 부각해 호수와 함께 담아낸 장면은 차가 아니라 보트를 연상시킨다.




고라 카단(強羅花壇), 가나가와 현 하코네마치


과거 황실 별장. 현재 1박이 최고 10만 엔(2인 기준)을 넘는 고급 료칸이다. 성수기에는 20만 엔 가까이가격이 올라가지만 그래도 빈 방 찾기가 어렵다. 하코네는 온천 명소이기도 해서 인근에 고급 료칸들이 많다. 일본에서 온천 명소란 곳은, 딱 알 수 있듯 화산 지대다. 2015년에도 소규모지만 분화한 적이 있는 휴화산. 화산 같은 1,600ps 8.0리터 엔진에 걸맞아서 찾은 장소일까?



물론 아니다. 고라 카단은 객실과 정원, 그리고 주변 자연환경이 끊김 없이 이어진(seamless)한 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자연을 자신의 방 안까지 끌고 들어오면서도 인공미는 최소화한 일본식 조경의 절정이 바로 이 고라 카단에 구현돼 있다. 이는 당연히 69억 원짜리 로드스터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또한 전통의 아름다움을 통한 휴식과 재충전은 부가티 브랜드가 부자들에게 제공하는 경험이자 브랜드 정신에 다름아니다. 



특히 미스트랄(Mistral)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남부 지방의 겨울 바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문화적으로 서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어떻게든지 두 나라는 서로 엮는데, 낯간지러울 정도다. 남부 프랑스의 겨울 바람이래봤자 지중해성 기후다. 일본의 겨울 바람 역시 해양성 기후라 엄청난 삭풍이라고 하긴 어렵다. 미스트랄이 그 바람을 닮았고 그게 일본 가나가와의 자연적인 느낌과 닮았다고 열심히 갖다 붙이는데, 그래 서로 잘 붙어먹어라. 인정은 한다.



일본의 부자들은 부의 축적 역사가 길다. 가업 승계의 미덕을 강조하는 까닭에 역사가 오랜 기업이 많은 것도 요인이다. 물론 가장 오래된 기업인 건축 회사 곤고구미(578년 창업)가 백제에서 건너온 사람이라지만, 그걸 이어 천 년 기업으로 만든 건 일본인과 일본의 토양이다. 2위도 일본 기업인 호시 료칸(718년)이다. 어떤 차든, 놓인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일본 부자들에게 입양될 미스트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보존될 지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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