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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Oct 20. 2020

1화 버리기 선언 당일

버리니까, 이너피스!







나 당분간 성당 안 갈거야


그 말을 꺼낸 곳은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동태찌개 맛집이었다. 원래 말이 없는 우리 집안 식구들은 평소와 같이 정적을 반찬삼아 매운 동태찌개를 먹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돌연 정적을 깬 것은 바로 나. 성당을 안가겠다는 선언을 동태찌개 집에서 꺼내게 될 줄은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닌 성당이었고 30년이 넘도록 매일 같이 매달렸던 종교를 버린다는것은 내게 정말 중대하고 거대한 하나의 결정이었다. 어린시절 회초리를 들며 나를 쥐잡듯이 잡던 엄마였지만 내가 어디 하나 자리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나를 쥐잡듯이 잡아봤자 안될거라는 걸 일찍 깨달으셨다. 늘 막 살아왔기 때문에서인지 엄마 앞에서 식은땀을 흘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떨렸다. 종교는 엄마와 나 모두에게 중요한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리라. 


"나 당분간 성당 안갈거야"

“왜?”


엄마는 나의 그 뜬금없는 선언에 걱정스러우면서도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한번 들이쉬며 물으셨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데 난 미쳐 그것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마치 면접에서 왜 이 회사에 지원하셨냐는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그냥… 뭐…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서 그래…”


동태찌개 앞접시에 얼굴을 박고 나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는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만큼은 호기로웠지만 선언의 모습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그 날, 어쨌든 나는 그렇게 종교를 버리기로 선언했다. 



우리 루시아는 커서 수녀님 되자! 



어린시절부터 나는 이런 말을 종종 들어왔다. 종교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살 날이 구만리도 넘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수녀님'이라는 타이틀을 씌우는 어른들이 내 주변에는 많았다. 왜였을까?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연은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애써 합리화를 시켜본다. 어쩌면 결혼생활이 너무 불행하여, 누군가의 아내 혹은 남편으로 사는 것에 회의를 느껴, 성당을 열심히 다니는 어린 소녀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부, 수녀들이야 천주교 신자라면 성직자를 권유해 보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니 그렇다치고 말이다. 


그 말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내가 정말 수녀가 되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마음 한켠으로는 '이건 아닌데' 라는 마음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내 안의 평화는 없었다. 어린시절 얻은 '미래의 수녀'라는 타이틀은 내 인생 여기저기 영향을 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버리기'를 통해 어떤 평화를 얻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탈종교를 꿈꾸지만 아직 '그것'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함께 하기를 바라며. 







글. 박경

그림. 딩사장 

소속. 우아스튜디오 

버리니까, 이너피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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