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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Oct 20. 2020

2화 우리는 '가지'가 아니다

버리니까 이너피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라는 성가가 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가지'가 아니라
나무 그 자체이다. 



이것은 개 풀 뜯는 탈종교 이야기

   


어린 시절, 친할머니는 나를 당신의 무릎에 눕히고 동네 사람들과 집에 모여 '나는 포도나무요'라는 성가를 자주 부르셨다. 구성진 그 성가의 멜로디가 여전히 내 기억에는 생생하다. 한국이 전 세계의 최강국이라고 굴뚝같이 믿을 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괴팍한 할아버지와의 결혼 생활을, 할머니는 종교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가씨 시절, 전태일 열사가 바꿔달라고 울부짖었던 미싱 공장의 힘겨운 노동 현장에서 엄마는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막내 동생까지 키워냈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 엄마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고 결혼 후 태어난 나는 자연스럽게 천주교라는 종교를 가졌다.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천주교라는 종교에 ‘선택당한’ 어린 시절의 나는, 성당이고 뭐고 놀고만 싶다며 종교를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힘든 결혼 생활을 종교로 이겨낸 시간들을 지켜보며 난 그 시간들이 신이 준 은총이라 믿었다. 할머니가 괴팍한 할아버지의 성격을 이겨내는 것 또한 신이 준 힘이라는 믿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엄마와 할머니처럼 종교에 매달렸다.






그래서 성당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거부하지 않았다. 방학이면 새벽 미사, 평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묵주를 늘 들고 다니며 걸어 다니면서도 기도를 했다. 그래야만 불안한 우리 집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정말 그것이 신의 은총이었을까, 강한 의심이 든다. 확실한 것은 내가 속해있던 가정을 지킨 것은 오로지 엄마와 할머니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늘 곁에서 지켜보던 나조차도 그들의 노력과 힘을 신의 것으로 바꿔치기해버렸다. 이제라도 엄마와 할머니가 가졌던 인내를 오로지 그들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이 참 다행스럽다. 



할머니와 엄마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것은
그들이 강해서였기 때문이다.
그 영광을 신이 다 가져가서는 안된다.


사는 곳이 지옥인 사람들은 천국을 꿈꾼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천국이 보이지 않고 악마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천국을 만나게 해 준다는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라도 있어야 땅에 발을 붙이고 살 희망이 보이지 않았겠는가. 

아시아의 많은 서민들이 천국을 이야기하는 파란 눈의 신부의 말에 눈물 흘리고 흑인 노예들이 가스펠을 부르며 천국을 노래한 이유도 그 결이 같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도 강했다. 신을 만든 사람들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라는 그 성가를 쓰며 우리에게 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엄마와 할머니는 가지 따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나무 그 자체였고 지금도 그렇다. 

 




글. 박경

그림. 딩사장 

소속. 우아스튜디오 

버리니까, 이너피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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