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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Oct 22. 2020

3화 태어난 것이 죄라는 교리

버리니까, 이너피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아 생각만 해도 쓰리다. 
내 탓 좀 그만하자.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는 ‘원죄’라는 교리. 이것은 천주교가 주장하는 뿌리 깊은 진리 중 하나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애 금수저를 날치기하면서 태어난 것도 당연히 아닌데 태어난 것만으로도 죄가 있다니.

이런 가르침을 가진 곳에서 20대 시절을 봉사활동으로 바치고 30여 년 넘게 꼬박꼬박 들려 자리를 채웠다는 것에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질 정도다.

사실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는 늘 스스로에게 ’ 내 탓’이라고 채찍질했다. 회사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친구 사이에 생기는 사소한 갈등에도 나는 늘 나를 탓했다. 그 태도의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종교였다. 당시에는 물론 몰랐다. 매주 미사 시간마다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를 세 번 외치는 미사 절차 도중에도 몰랐다. 종교를 버리고 난 후에야 그것이 종교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죄인이다라는 가르침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의 미래는 누가 책임지는 걸까? 






어쩌면 ’ 원죄’라는 교리는 모든 일에 반성하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는 자들이 생기는 것을 미리 막아보자는 천주교의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 나는 죄를 가졌다’라는 가르침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의 미래는 도대체 누가 책임지는 걸까. 


1960년대 아일랜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화한 ‘막달레나 시스터즈’(2002년 作)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당시 죄를 지은 여성들을 감금하고 폭행하며 대가 없는 노동을 치르게 한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 사건을 다루고 있다.  수녀원에 끌려간 여성들은 죄인이 아니라 미혼모가 되었거나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대부분이었고 종교는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그들을 마음대로 짓밟았다. 



출처: 다음 영화



종교가 내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종교를 버림으로써 이너피스! 



이 영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종교가 기준으로 삼는 ‘원죄’라는 것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최근에는 ‘막달레나 시스터즈’와 같은 사건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 물론 일어나서도 안된다. 그러나 태어난 모든 이에게 ‘원죄’가 있다는 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 너는 원죄를 가졌으니 매주 성당에 나와 신을 통해 정화를 해야 한다’라는 그 가르침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더 어떻게 말로 설명을 해야 할까. ’ 원죄’는 ‘너는 더럽다’라는 말을 두 글자로 줄인 것이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이 돼서야 나는 원죄라는 교리를 극복했다(고 믿고 싶다). 슬프게도 나는 30여 년을 눈치 보며 살았다. 눈치 보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랬다. 눈치가 있는 것과 눈치를 보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 이것은 내 선천적인 특성도 물론 있을 테고 종교가 아닌 다른 환경 때문에 얻어진 습성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뭘 또 잘못한 것은 아닌지, 눈치 보는 습성이 태어나면서부터 들었던 교리로 인한 영향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앞서 태어나면서부터 ’ 나는 죄를 가졌다’라는 가르침을 꾸준히 들어온 이들의 미래는 도대체 누가 책임지는 거냐고 스스로 물었다. 당연히 종교는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버림으로써 이너 피스를 찾는다. 




글. 박경

그림. 딩사장 

소속. 우아 스튜디오 

버리니까, 이너피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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