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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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은 영화인들이 먼저 '위기론' 설파에 앞장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늑대가 온다고 떠들어댔던 양치기 소년 역할을 언론 대신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싸이더스FNH의 차승재 대표는 얼마 전부터 각종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한국 영화계는 한 두 가지의 해법으로 풀기 어려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외치고 있다.
지난주에는 '충무로의 승부사'로 통하는 강우석 감독이 영화 담당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영화인들끼리 모여도 영화에 대해 언급을 꺼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배수의 진을 치는 각오로 영화를 만들겠다"라며 비장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사자들이 위기를 인정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상당 기간 영화로 '밥줄'을 이어온 중견 영화인들의 입에서 나온 '위기론', 그들의 애타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책 없는 낙관일지도 모른다. 영화인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서 오히려 희망의 가느다란 불빛을 찾게 된다.
누구는 "네가 뭔데"라며 비웃을 지 몰라도 우회상장 등으로 남의 돈을 끌어당기고 만지작거리는데 정신이 팔렸던 한국 영화계가 이제야 샴페인 잔을 설거지통에 내려놓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재산은 '사람'뿐이다.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복합상영관과 메이저 투자 배급사로 상징되는 대기업 자본은 말 그대로 자본에 불과하다. 결코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영화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한 번 지켜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롭겠다.
지난 2007년 4월 12일 자 스포츠서울에 게재했던 이 글의 배경부터 간략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당시는 한국 영화계에 진하게 드리워져 있던 '취기'가 조금씩 가시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좋은 시절이 슬슬 끝나가던 때였다.
앞서 2004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쌍끌이 1천만 관객 동원으로 영화계는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금융 자본이 영화인들과 손잡고 우회상장이란 방식을 통해 돈을 쏟아부은 덕분이다.
그들은 한국영화를 '황금알을 빨리 낳는 거위' 쯤으로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투자부터 수익 창출까지 꽤 긴 시간을 잡아먹는 다른 분야에 비해, 영화는 아무리 길어도 평균 2년이면 벌고 못 벌고가 판가름 난다.
빠른 승부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화투판에서 '섰다'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과 일견 비슷한 이치, 대기업과 금융 자본이 뛰어든 첫 번째 이유였다.
한 번 대박이 터지면 먼저 제작했다 망한 영화 수 편의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을 만큼 거액을 쓸어 담는 것도 매력 포인트였다. 여기에 영화계 종사자라고 하면 왠지 세련돼 보이기까지 하니 시쳇말로 돈을 '담그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계의 호주머니는 갈수록 얇아져갔다. 흥청망청대던 영화인들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07년 초 펴 낸 '2006년 한국영화 연감'에 따르면 2006년 스크린 수와 제작 편수는 2000여 개와 108편으로 각각 늘어났지만, 제작비 10억 원 이상을 들인 극장용 상업영화 83편의 평균 제작비가 50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수지 타산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실제로 108편 가운데 22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겨, 영화 5편을 제작하면 4편이 적자인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창의력에 자본까지 더해져 금세라도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것만 같았던 한국 영화계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문제는 영화인 대부분이 그리도 격하게 반겨하던 '넘쳐나는 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