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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n 30. 2020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정치인 2

조 가자의 연예수첩 19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평화주의자로 소문난 칠순의 미야자키 감독은 줄거리의 예민한 측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꿈과 사랑을 그린 것과 관련해, 피해 당사국이었던 한국 관객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 듯 보기 미안할 정도로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는 "우리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았다. 봤으면 알겠지만 일장기(를 단 전투기)가 우리 영화처럼 많이 추락하는 일본영화는 없다" "아베 정권같이 별 거 아닌 문제로 한중일 세 나라가 싸우면 안 된다. 아베 정권은 곧 있으면 사라진다" 등과 같은 민감한 내용의 발언을 직설적으로 쏟아냈다.


그러나 노감독의 이처럼 솔직한 발언에도 '바람이...'는 전작들과 달리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전쟁 미화 논란이 가장 컸다.

나중에 수입사를 통해 전해 들었는데, 한국에서의 저조한 스코어를 확인한 미야자키 감독은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이 내 진심을 몰라준 것 같다. 정말 슬프다"라며 한동안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딸과의 밑도 끝도 없는 문답에 이어 잠시 미야자키 감독과의 만남을 떠올린 뒤 이번에는 "넌 일본을 어떻게 생각해?"라고 먼저 질문했다.

딸은 거침없이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역사책을 읽어봐도 그렇고, 뉴스를 봐도 그렇고 일본은 나쁜 나라잖아"라고 답했다.


딸의 이 같은 시각에 해 줄 수 있는 얘기는 다음이 전부였다.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일본과 일본 사람 그리고 일본 정치인은 따로 볼 필요가 있어. 뉴스에 자주 나오는 아베 총리라고 있지? 그런 아저씨처럼 정치하는 사람들을 빼고 많은 일본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일 거야. 맞고 틀린 건 분명히 가려야겠지만, 덮어놓고 일본 사람 모두를 미워해선 안되지 않을까."


그날의 대화로 딸이 당장 바뀌진 않을 것이다. 특히나 아베 정권이 요즘 하는 짓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제로센을 타고 자살 공격에 나섰던 가미카제의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덤벼든 것을 보면 대일 감정이 좋아지기란 정말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자라나는 세대만큼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를 객관적이고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희망한다. 구체적으론 일본과 대다수 일본인, 소수의 일본 정치인을 구분해서 볼 줄 아는 자세 말이다.

모두를 싸 잡아서 욕하기만을 반복한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를 그리워하며 '우향 우'만 외치고 있는 일본의 몇몇 정치인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예전 글을 읽다 보니 어린 딸과 꽤나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 어깨에 살짝 힘도 들어간다. 하지만 잘난 척한다고 오해는 마시라. 그 같은 대화는 지금 꿈도 못 꾸니까. 

그때만 해도 아빠의 품에 안겨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던 딸은 질풍노도의 시기인 고1답게(?) 요즘 눈도 안 마주치려 한다. 딸의 쌀쌀맞고 데면데면한 태도가 가끔은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좋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오래전 칼럼을 다시 꺼내어 보는 와중에도 일본, 아니 아베 정권의 몰지각한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일방적으로 먼저 시작한 수출 규제와 무역 보복부터 최근 군함도 전시관의 역사 왜곡과 G7의 한국 초청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움직임까지, 개선의 여지는 고사하고 갈수록 못된 짓만 골라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곧 있으면 사라진다"라고 했던 미야자키 감독의 말이 살짝 무색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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