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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l 03. 2020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정치인 3

조 기자의 연예수첩 20

오래전 딸과 나눴던 대화 내용처럼 가급적이면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정치인을 구분하려 애썼다.

그도 그럴 것이 이웃 나라로서의 일본과 뉴스로 접하는 일본 정치인, 공사석에서 만나는 일본인은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로서의 일본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다. 또 아베로 대표되는 일부 일본 정치인은 그 같은 과거를 반성하는 대신, 지금도 후안무치한 언행을 일삼고 있다. 

반면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만나왔던 일본인 대부분은 예의 바르고 사려 깊었다. 특정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들 가운데 다수가 매체 종사자들이었으므로 비슷한 관점을 공유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양국의 과거사 청산처럼 대단히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에 대해 가끔 이야기할 때도 해결을 위한 방법론과 순서의 차이로 이견을 주고받은 적은 있었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화해한 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두 나라가 더욱 힘을 합쳐야 한다'란 결론만큼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그릇된 소수의 위정자들로 인해 선량한 다수의 대중마저도 어쩌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란 걱정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일본 사회가 무력감에 빠진 것처럼 보여서다.

한일 과거사 청산 여부에서 비롯된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 등은 양국의 인식 차이가 커 아주 예민한 문제이므로 그렇다 치자. 그럼에도 도쿄 올림픽 개최 강행을 위해 코로나 19 창궐을 뭉개고 대충 넘어가려는 정부를 왜 그냥 놔두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거 이어령 교수가 자신의 명저인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다뤘던 그들만의 고유한 국민성을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상식'을 외치고 요구하는 대다수의 목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는 지금의 바다 건너 상황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다. 우리 같았으면 상을 뒤집어도 벌써 몇 번을 뒤집었을 텐데 말이다. 


말장난 같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 내부의 상황이 오히려 한일 관계의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듯싶기도 하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미치는 코로나 19 문제에 관해서도 침묵을 지킬 만큼 무기력해 보이는데, 무슨 여력이 있어 미야자키 감독처럼 이웃사촌의 오랜 아픔을 헤아리겠나!


무역 분쟁에 코로나 19 창궐까지 더해져 하늘길 뱃길 모두 거의 가로막힌 상태다. 싸우더라도 만나서 싸워야 하는데, 아예 만나는 횟수조차 줄어들고 있으니 참으로 큰일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정치인을 조금은 구분해 바라보던 모습은 우리 세대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다음 세대인 내 딸이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편견 없이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는 좋아져야 하는데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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