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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l 21. 2020

그들의 방송 하차 혹은 배제는 누가 결정하는가 3

조 기자의 연예수첩 25

영화도 그렇지만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 캐스팅은 실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한다. 누구를 메인으로 출연시키느냐가 제작 과정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기가 막히게 신선한 아이디어를 앞세워도,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나 '1박2일' '삼시세끼'의 나영석처럼 '신의 손'이라는 불리는 스타 PD가 지휘봉을 잡아도 출연진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채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때로는 PD를 포함한 제작진이 주요 출연자의 바람막이를 자처하기도 한다. 감독이 경기에서 결정적인 패인을 제공한 선수를 대신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PD도 자신의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이들을 위해 욕받이를 감수하곤 한다. 

그 같은 자세를 갖추지 못하면 감독과 PD로 나설 자격이 없다. 요즘 기준과 시선으로 보면 다소 가부장적인 모습인 듯싶지만,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에게는 언제나 요구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제작진이 출연진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달콤한 말로 캐스팅해놓고, 여론이란 이름의 비난이 쏟아지면 '나 몰라라'하며 출연자의 자의 반 타의 반 하차를 은근히 유도하고 방관하는 태도다. 


관련해 팟캐스트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인 두 남성 방송인이 최근 지상파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캐스팅됐다가 첫 방송을 앞두고 갑작스레 하차해 이런저런 뒷말을 낳았다.

둘 다 수년 전 방송에서 여성을 상대로 쏟아냈던 과격한 발언과 공개석상에서의 막말이 뒤늦게 문제가 돼 낙마했다. 낙마 직후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여러 차례 진심 어린 사과도 했지만, 막말의 장본인이란 주홍글씨는 영원히 가슴에서 떼지 못할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런데 낙마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보인 모습과 내린 결정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캐스팅을 신나게 홍보할 땐 언제고, 출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자 어떤 책임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해명과 반복된 사과 그리고 하차의 변은 오롯이 당사자들의 몫이었을 뿐, 제작진은 입 다물기에 급급했다.


그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본인들이 캐스팅한 출연자의 과거를 전혀 몰랐을까? 만약 몰랐다면 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알았다면 출연자를 우선은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당연히 전자의 경우는 아니었을 텐데, "출연자인 아무개의 예전 발언과 행적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로 캐스팅했다. 과거와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당사자는 물론 제작진도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겠다"라고 약속함으로써, 자신들과 한 배를 탄 출연자를 최대한 보호하는 게 급선무 아니었을까.


대중의 주된 정서란 표면적 이유를 앞세워 특정 출연자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여론'의 정체도 실은 궁금하고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회의 '공기(共器)'인 방송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그들에게 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과실을 지속적으로 트집 잡아, 진심 어린 자숙과 처벌을 감수했는데도 반성과 재기의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빼앗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며 심하게는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처사다.


얘기하다 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갑자기 떠오른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초인적인 능력의 예언자가 제시한 범죄 징후, 즉 일어날 것으로 확신하지만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범죄를 체포와 법적 처벌의 근거로 삼는 영화 속 미래 사회가 지금의 대한민국과 슬쩍 겹쳐진다.


손가락질받았던 전력(前歷)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누군가를 쉽게 예단하고 배제하는 것,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거세게 비난하고 몰아세우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여론과 정서를 가장한 일종의 파시즘적인 폭력이다.

또 파시즘적인 폭력에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며 쉽게 굴복하고 방금전까지의 동료를 외면하는 행위 역시 파시즘적인 폭력만큼이나 나쁘다. 출연자의 도중하차가 횡행하는 요즘 방송가를 지켜보며 나름 거창하게(?)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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