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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l 22. 2020

흠결 없는 인생, 어디 있을까마는... 1

조 기자의 연예수첩 26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우리 사회를 이토록 갈기갈기 찢어놓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놀라움과 슬픔, 허탈함과 배신감, 분노와 의심이 한데 뒤섞여 모두를 아노미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요즘이다 


한 개인의 일생을 평가할 때 기자란 직업 특성상 잘한 일과 못한 일을 비교적 냉정하게 구분해 왔다. 좋은 부고 기사는 고인이 걸어온 길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유명인일수록 '용비어천가' 식의 일방적인 추앙 내진 찬양은 피하려 애썼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못한 일이 압도적으로(?) 많더라도 꼼꼼히 찾아보면 잘한 일도 간혹 있기에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흠결 없는 인생, 못나기만 한 삶이 어디 있을까...'란 생각으로 가급적이면 양지와 음지를 골고루 바라보려 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공과(功過)를 구분해 접근하기에는 너무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존경받기에 나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한 망자(亡者)의 지난 일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지탄받기 일보 직전이다. 

못한 일이 1개 있으므로 잘한 일도 1개를 공평하게(?) 차감한다는 식이 아니다. 못한 일 1개가 잘한 일 수백 개 아니 모두를 덮고도 남을 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성질이므로 더 갈피를 못 잡겠다. 


앞서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을 언급하며 "요즘은 삶의 윤리적인 태도와 대외적인 업적의 가치가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는 추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이의 황망한 죽음과 더불어 지난 2018년 11월 27일 '혁명과 사랑 그리고 낭만을 얘기하던 베르톨루치가 떠났다'란 제목으로 출고했던 고(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부고 칼럼도 어쩌면 그 같은 관점에서 되새김질해 필요가 있겠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시작을 앞둔 1988년 12월이었다. 당시는 기말고사를 끝내고 방학을 맞이할 때쯤이면 학교 차원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하는 게 일종의 대단한 문화 체험이었다.


복합상영관이 아닌 단관 시절,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스크린을 자랑하는 극장은 퇴계로 대한극장이었다. 학생들이 다른 데로 샐까 염려하는 담임 선생님의 삼엄한(?) 감시 하에 친구들과 낄낄대며 극장 안 객석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극 중 청나라의 꼬마 홍제 푸이가 어둠 컴컴한 자신의 방을 나서는 장면에서 절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성 내부가 스크린에 펼쳐졌다.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 '죽(竹)의 장막'에 가려있던 중국을 일부나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말 제목의 '황제'가 영어로 '킹(King)' 아니냐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고등학생들은 그때부터 넋을 잃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바로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였다.


그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과 가까워졌던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26일(현지시간) 향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얼마 전 한국을 대표하던 영화인 신성일이 세상을 떠난데 이어 이번에는 이탈리아를 상징하던 거장의 사망까지, 올 한 해 한국과 유럽 영화계는 소중한 국보급 자산을 잃었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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