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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l 24. 2020

흠결 없는 인생, 어디 있을까마는... 2

조 기자의 연예수첩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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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국내 관객들에겐 '몽상가들'로, 40대 이상에겐 '마지막 황제'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익숙한 그다. 이 때문인지 베르톨루치 감독하면 야한 주제 혹은 오리엔탈리즘과 노스탤지어를 다뤘던 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듯 싶다.


그러나 작품 세계를 돌이켜보면 혁명을 꿈꾸던 꽤나 급진적인 사상의 소유자였다. 공산주의자로 잘 알려진 시인 겸 감독 피에르 파졸리니의 조감독으로 시작했던 이력과 초기작 '순응자' '1900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공연히 코뮤니스트를 자처했었다.


미완으로 남은 프랑스 '68혁명'의 아이들, 이른바 '68세대'답게 '파리에서의...'에선 극한의 허무주의적 시각으로 성(性)과 정치를 얘기하고 '마지막 황제'에선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으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탓에 일부 평론가들의 비판도 받았다.


이후 '마지막 사랑'과 '리틀 부다'를 거치면서는 탐미주의에 경도된 듯한 인상도 받았지만, 뼛속 깊이 각인된 낭만적이면서도 혁명가적인 기질은 후기작 '몽상가들'에서 다시 발현됐다. 극중 '68혁명'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남녀 쌍둥이와 이들을 속절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미국인 영화광 청년의 모습은 베르톨루치 자신의 젊은 날 양가적 자화상이기도 했다.


물론 예술가의 고결한 삶이라며 마냥 우러러볼 수 없는 행적도 있다. 말년에는 '파리에서의...'의 여자 주연 마리아 슈나이더가 촬영장에서 감독과 상대 연기자 말론 브랜도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해 명성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같은 오점에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세계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싶다. 개인과 사회, 섹스와 정치, 낭만과 혁명 등 좀처럼 엮기 힘든 상반된 이야깃거리들을 그토록 유려한 화법으로 풀어낼 수 있는 영화 작가가 지금 또 등장할 수 있을까.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떠오른 질문이다.


베르톨루치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추억 내진 평가는 위에 소개한 칼럼 이상으로 더할 게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더하면 아주 사적이고 소소한 감상 정도다. 주제에서 곁길로 약간 새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살짝 가볍게 바꿔보는 차원에서 오래전 기억을 살짝 꺼내본다. 


1972년작인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엠마뉴엘' 시리즈와 더불어 1970~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남성들에겐 두 눈으로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그래서 관람을 더욱 갈망할 수밖에 없었던 '금지된 판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품 모두 성(性) 묘사의 수위가 파격적으로 높아 수입과 상영이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탓에, 구하기 매우 어려운 'B짜 비디오'(불법 영상물을 일컬었던 당시의 속어)가 아니면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목만 비슷하게 흉내 낸 국산 아류작들도 당시 쏟아져 나왔다. 

연출자는 부인하지만, '애마부인' 시리즈가 제목부터 '엠마뉴엘'을 따라 했다는 건 너무도 익히 알려진 사실. 이 과정에서 '웃픈' 대목은 선정성을 이유로 검열에서 막힐 것을 걱정한 제작진이 제목에 말 마(馬) 대신 삼 마(麻)를 썼다는 것이다. 


제작진의 이 같은 작명 이유는 달리는 말을 사랑하는 것(愛馬)은 야하고 삼베를 사랑하는 것(愛麻)은 덜 야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으리라 본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엄밀히 따져볼 게 있다. 다 자란 마(麻)의 꽃잎을 말린 게 마약류인 대마초란 걸 떠올리면, 대마초를 사랑한다는 뜻의 애마(愛麻)는 선정성 여부를 뛰어넘어 범죄 조장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사전 검열 기관이었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칼날을 피해 갔으니,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다.


또 2대 '애마부인' 오수비가 주연했던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고'란 영화도 있는데... 곁길로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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