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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Aug 06. 2020

개성을 인정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예능은 불가능하나?2

조 기자의 연예수첩 30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한국 코미디 역사에 길이 남을 '개다리춤'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봤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죠.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그분을 안방극장에서 만나는 횟수는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으로 접어들면서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됐죠. '서울의 봄' 당시 JP(김종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신 군부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쫓겨가다시피 했다는 비화는 불과 몇 년 전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의 빈자리는 이주일 심형래 이창훈 등으로 속속 채워졌고,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물론 1980년대 후반 간간이 콩트 코미디 프로그램에 한참 어린 후배들과 호흡을 맞춰 출연하기도 했지만, 왕년의 이름값을 되찾기에는 솔직히 역부족이었죠. 콩트 코미디의 전체적인 퇴조 분위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바뀐 감성이 배삼룡 특유의 구수하고 인간적인 코미디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던 듯합니다.


이른바 '독한' 웃음이 판치는 시대입니다. 웃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감추고 싶어 하는 과거마저 끄집어내야 합니다. 얼마 전 개그맨 이윤석이 MBC '무릎팍도사 - 라디오스타'에 나와 분석한 것처럼, 출발부터 잔뜩 독을 품고 서로를 흠집 내며 물어뜯은 뒤에는 자기들끼리 좋아서 킥킥대는 '침팬지 식' 개그가 사람들을 웃깁니다.


이 뿐만이 아니죠. 겸손을 넘어서 위악적인 '자기 비하' 내지는 '자기 폭로'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코미디가 건조하고 메마르다 못해 살벌하게 바뀌어 버렸습니다.


다시 '순한' 코미디가 그리워지네요.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면서도 막판에는 점잖게 '한대' 먹이는, 그런 웃음 말입니다.


순하고 어리숙한 바보 연기의 대가였던 배삼룡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대학교 2학년, 만 스물이 되자마자 정말 우연한 기회로 개그계와 짧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인연을 맺게 된 자세한 계기는 나중에 밝히겠다.


어른이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철부지였던 스무 살 청년의 두 눈에 비친 개그계의 내부는 TV로 보던 것과 너무 달랐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SBS의 개국 등으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인기 개그맨 한 명이 동료 여러 명을 마치 사단처럼 이끌고 다니는 '아무개 라인' 식의 파벌이 판쳤고 폭력적인 군대식 조직 문화가 강했다. 여기에 지연(地緣)으로 똘똘 뭉친 PD와 개그맨의 비정상적인 물밑 거래도 횡행했다.


어쩌면 대중이 자신들을 TV 속 모습처럼 실생활에서도 그저 우스운 사람 정도로 하찮게 여길까 봐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또 정극 배우가 장르의 일부로 희극 연기를 하는 미국과 달리, 전문 희극인이 따로 있는 일본의 이른바 '오야붕(두목이란 뜻의 일본어)'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면 바깥 코미디의 세계는 이렇듯 거칠고 조금은 무지막지했지만, 화면 안은 순한 양들의 세상이었다. 아니 순하다 못해 바보스러워 어이없는 웃음과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들이 콩트 코미디의 인기를 주도했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콩트 코미디 캐릭터들의 직업이 대부분 바보 백수이거나 좀도둑 양아치였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다룰 수 있는 소재의 한계가 분명했던 당시의 방송 환경이 거든 결과이기도 하다.


정반대의 두 얼굴을 지닌 코미디의 세계에서 어떤 게 진짜 얼굴인지 몰라 헷갈리던 와중에 개그맨 A가 이런 조언을 해 줬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미담꾼으로 사랑받고 있는 A는 "인성이 선해야만 오래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코미디인 것 같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결국은 강한 것인데, 이 동네에서 살아남으려면 착해야 한다는 거지"라며 "개그 스타일도 지나치게 독하면 잠깐은 사랑받을 수 있어도 생명력이 길지 못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나중에 어느 정도 사실로 증명됐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게 굴었던 몇몇은 정말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반대로 오랜 무명 생활에도 착한 심성을 잃지 않았던 이들은 결국 스타로 우뚝 섰다. 데뷔 10여 년 만에 '뜬' 유재석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개그 스타일에서도 "독한 개그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던 A의 조언이 통했을까? 절반은 맞았고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김구라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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