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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Aug 14. 2020

개성을 인정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예능은 불가능하나?3

조 기자의 연예수첩 31

김구라의 등장은 한국 코미디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 그의 등장 이전까지 한국 방송계에서 희극인으로 인기를 오래 누리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남을 공격하지 않는 순한 개그를 해야 하고, 두 번째는 입담과 연기력을 겸비해야만 했다. 


이 중 연기력 항목에 어떤 이들은 의문을 표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국진 등 롱런하는 희극인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뭘까? 정답은 연기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것이다. 물론 콩트에 한해서이지만, 김국진은 정극 배우로 전업해 미니시리즈 주연까지 맡았을 정도다.


김구라는 이 같은 성공 등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독한 개그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던 누군가의 조언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유다. 여기에 연기력도 대단히 아쉬운 수준이다.

일례로 누구나 선망하던 지상파 공채로 출발했지만, 본명인 김현동 시절의 콩트 연기를 보면 솔직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기 그지없고 발전 가능성마저도 전혀 없어 보인다.


결국은 고육지책으로 건너간 팟캐스트에서의 거침없는, 때론 막말에 가까웠던 입담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B급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다시 지상파로 돌아와서는 독한 기운을 조금 빼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김구라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는 직설 화법의 이른바 '쏘는' 개그다.


이처럼 장수를 점치기 어려운 조건만 두루 갖췄지만(?), 방송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은 유튜브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개그맨을 떠나 방송인으로서 김구라의 가장 큰 장점은 평범한 일반인의 눈높이로 솔직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면전에선 결코 물어보기 어려운 돈과 사생활 문제 등에 대해 얼핏 보면 다소 무례할 만큼 거칠게 파고든다. 또 시청자가 듣기에 다소 뻔한 대답이 상대로부터 나오면,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가차 없이 자르고 지적한다. 제작진을 포함한 관계자, 이른바 '선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반면 김구라의 방송 스타일은 안티 세력의 공격을 부추기곤 한다. 특히나 예의범절을 중시하고 실명 비판이 일반화되지 않은 분위기의 우리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과거 팟캐스트에서 마구 쏟아냈던 발언들이 뒤늦게 문제를 일으켜 한참 동안 자숙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럼에도 김구라의 방송 스타일을 겨냥한 남희석의 조심스러운 비판이 다소 뜬금없어 보였던 까닭은 쓸데없는 정의감의 발로처럼 느껴져서였다. 


보통 김구라는 인지도가 낮은 무명 연예인, 특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후배 개그맨일수록 면박 주기 등 공격적인 말 걸기를 주로 시도한다. 그런데 그 모습에 깔린 저의를 '선수'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출연 분량을 확보해주기 위한 일종의 위악적인 '배려'란 걸 말이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방송 경력으로 치면 김구라보다 오히려 선배인 남희석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마도 잘 알고 있었겠지만, 김구라의 위악적인 배려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했던 후배의 푸념을 듣고서 나름 위한다는 생각에 한 마디 던지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한 마디를 던진 경로가 기사화되기 딱 좋은 공개 SNS인 데다, 설상가상으로 그 대상이 동료 연예인이라는데 있었다.


스타일은 곧 캐릭터다. 방송에서 보이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캐릭터일 뿐, 실제 인성과 같은 선상에 놓고 훈계 내진 교정하려는 건 오지랖에 가깝다. 

물론 캐릭터 뒤에 숨는다고 모든 언행이 허용되는 건 아니다. 배려라는 미명 하에 캐릭터를 앞세워 행여나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이건 배려가 아닌 '언어폭력'에 불과하다.


가급적이면 상대의 개성을 인정하고, 그 개성이 마음에 조금 안 들더라도 고쳐볼 것을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현명한 배려 그리고 자신의 속내와 상관없이 불편해하는 상대가 있다면 스타일을 한 번쯤 바꿔볼 줄 아는 유연한 자세...말하고 행동하기 전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남희석과 김구라는 물론이고 누구나 시도 가능한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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