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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Aug 18. 2020

할리우드 전설의 '한때 그녀' 손드라 록을 아시나요?2

조 기자의 연예수첩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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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 '무법자 조쉬 웨일즈'부터 그 유명한 '더티 해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더티 해리 4 - 서든 임팩트'까지 모두 6편의 영화에서 10여년 넘게 손드라 록은 이스트우드와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췄던 연인이었다.


금발 미모에 탄탄한 연기력은 물론 연출 재능까지 겸비해 밝은 미래가 점쳐졌으나, 별거 수당을 둘러싸고 이스트우드와 기나 긴 소송을 벌이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할리우드의 변방으로 밀려나 자취를 감춰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록은 이스트우드의 아이를 두 번이나 낙태했고, 유방암까지 앓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스트우드로 인해 흥하고 망했던 그녀가 지난달 3일(현지시간) LA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는 뉴스가 14일 전해졌다. 향년 74세로 사인은 골수암에 따른 심장마비였다는데, 사망 사실이 왜 6주가 지나서야 알려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록의 사망을 신고한 사람은 남편 고든 앤더슨으로, 1967년 이후 50년 넘게 서류상 혼인 관계를 유지해 온 '법적 동반자'다.


이들의 엇갈린 말년을 지켜보며 조각가 로댕과 그의 조수이자 모델이었고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이 떠오른다. 로댕이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기 시작할 때, 정작 클로델은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스트우드와 록, 로댕과 클로델 가운데 누가 인생과 예술의 승자이고 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따질 필요도 없을 듯싶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건 인생과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남녀'들의 명암 대비가 웬만한 영화 이상으로 극적이고 흥미로울 뿐이다. 인생과 예술은 도대체 무엇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우선 반성부터 하면, 글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흘렀다. 굳이 '인생과 예술은 도대체 무엇일까, 새삼 궁금해진다'로 끝을 맺을 이유가 있었을까? 할 말만 하고 강단있게 끝내는 용기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아무튼 록의 살아 생전 인생은 정말 기구했다. 앞선 글로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많을 정도다.

우선 그녀의 부고를 알린 남편이자 배우인 고든 앤더슨은 동성애자다. 50년 넘게 해로한 부부 가운데 한 명이 동성애자라니 말도 안 될 법한 얘기지만, 실제로 그랬다. 이들의 관계는 '예술적 동지'였을 뿐, 살을 섞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일반적인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


심지어 록은 이스트우드와 동거하면서도 앤더슨의 생활비 아니 창작 활동 비용을 댔다. 앤더슨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내와 외간 남자인 이스트우드가 사랑하고 헤어지고 싸우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에도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이들 부부 관계의 특수성에 있었을 것이다.


록은 이스트우드의 '그녀'로만 머물기를 거부했다. 이스트우트를 거쳐갔던 다른 여인들처럼 뒤에 숨어 아기를 낳고 조용히 육아에만 전념하다 거액의 위자료를 받고 말없이 떠났다면 그렇게까지 파란만장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크린의 '꽃'으로만 남는 대신,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연출을 겸하려 애썼다. 실제로도 글 재주가 좋아, 직접 쓴 시나리오 몇 편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눈에 띄어 영화화될 뻔도 했었다.  

그러나 이스트우드의 집요하고 끈질긴 방해 공작으로 성사 일보 직전에서 번번이 '엎어지곤'(영화화가 무산됐다는 뜻의 영화계 은어) 했다. 스튜디오로서는 연출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 출신의 신인 여성 감독보다, 돈뭉치를 챙겨주는 '달러박스'의 눈치를 보는 게 우선이었다.


이후 '랫보이' 철혈여경' 등 두 어 편의 작품을 연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미했고, 설상가상으로 이스트우드와의 법정 다툼도 길어지면서 록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반면 이스트우드는 배우와 감독으로 그리고 제작자로 쉼 없이 승승가도를 달렸다. 영화를 만들 때 큰 돈 쓰기 싫어하는 '짠돌이' 정신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명(名) 제작자 마인드로 높이 평가받게 됐고, 많은 대사가 들어간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물론 연기하는 것도 짜증내는 '귀찮이즘'은 미니멀한 스타일을 중시 여기는 거장의 특징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 뿐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카멜시 당국이 거리에서의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한 조치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직접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주급 200 달러의 시장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어 많은 시민들의 연임 요구를 단칼에 물리치고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당시 그의 정치적 행보는 훗날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 여러 후배 연기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정 반대의 궤적을 그린 두 사람의 삶을 다시 더듬다 보니 또 감상에 젖게 된다. 아...주체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 예상 불가능한 사랑의 종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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