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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Aug 27. 2020

더 많은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등장하길 기대하며3

조 기자의 연예수첩 37

우리 대중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멀티 엔터테이너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봐 왔다. 좀 더 구체적으론 대중의 눈높이를 대변하겠다며 나선 업계의 일부 이해 당사자들 혹은 얼치기 전문가들의 다소 일방적이면서도 편향된 주장이 여론을 빙자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특히 언론이 주도할 때가 잦았다. 다음은 모 종합일간지가 지난 2004년 게재했던 '변신하는 가수, 위협받는 탤런트'란 제목의 기사로, 가수들의 연기 겸업 유행을 비판하고 있다.


가수들의 연기자 겸업 러시에 대해 시청자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렇다 할 스타 연기자가 없는 안방극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음반업계가 불황이니 어쩔 수 없다’ 등이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주된 이유다. 가수들도 연기력과 무관하게 그간 닦아놓은 인기와 팬클럽의 지원을 활용한다면 연기자 안착이 신인 탤런트들보다 어려울 리 없다.(중략)


비판과 반대도 만만찮다. 드라마 시장의 캐스팅 질서를 어지럽히고 드라마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견해가 주류다. 특히 숱한 무명시절을 거쳐온 전업 연기자들의 반발이 거센 상태다. 이들은 “몇몇 가수가 소속사의 자본과 기존의 인기를 무기로 방송의 모든 장르를 독과점하면 방송 전파가 그들의 사업수단으로 전락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런 지적은 가수의 연기자 변신 러시가 연예기획사들의 마케팅 전략과 방송사들의 안정적인 시청률 확보 전략이 맞물려 불거졌다는 데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원대 오미영 교수는 “이런 현상은 기획사들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키우려고 ‘할리우드식 스타시스템’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는 데다 음반시장의 침체가 지속돼 더욱 심화됐다”라고 분석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이기현 박사는 “한마디로 스타덤(stardom)과 팬덤(fandom)의 증폭 작용으로 나타나 ‘한류 열풍’이 불면서 심해졌다”며 “자칫 연기자도 가수도 제대로 못하는 ‘반쪽 연예인’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중략) 


KBI 이기현 박사는 “겸업이 고착화되면 우리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며 “하루빨리 연기자 캐스팅 제도를 가다듬고 방송사와 기획사, 연기자 단체 3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 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리의 비약과 억지가 조금 심한 기사다. 우선 가수들의 연기 겸업이 "자칫 연기자도 가수도 제대로 못하는 '반쪽 연예인'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가수는 노래만 해야 하고, 배우는 연기만 해야 반쪽이 아닌 '온전한 연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반쪽 연예인'과 '온전한 연예인'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기준은 어디에 있고 왜 위험하단 말인가?


또 "겸업이 고착화되면 우리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지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어 진다. 능력만 뒷받침되면 가수가 연기도 하고 배우가 노래도 하는 것과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 사이에 어떤 등식이 성립된단 말인가!


아마도 위의 기사는 '실력보다 인지도만 앞세운 몇몇 유명 가수들이 연기 한우물만 파 온 배우들의 밥그릇을 쉽게 빼앗는' 현실을 비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번지수가 애초부터 틀렸다. 연기나 노래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므로, 숙련 기간과 정도에 의해 그 수준이 결정되진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래만 해 온 가수는 노래와 연기를 겸업 중인 배우보다 노래 실력이 반드시 월등할까? 연기만 해 온 배우는 연기와 노래를 겸업 중인 가수보다 연기력이 무조건 뛰어날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업의 특성상 노래와 연기를 병행해야만 하는 뮤지컬 배우는 한 분야만 파고드는 이들에 비해 노래와 연기 모두 그저 그런 수준일 수밖에 없나? 


마이크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배우가 가수 뺨칠 만큼 노래를 잘하는 곳, 카메라 앞에 한 번 서 본 적 없는 가수가 배우 이상으로 연기를 잘하는 곳이 바로 연예계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밥그릇을 빼앗을지 말지는 이들이 몸담고 있는 기획사와 방송사가 좌우하는 게 아니다. 바로 대중의 몫이다. '한우물만 파고 남의 영역은 넘보지 말라'는 식으로 비판하며 처음부터 활동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각은 이 같은 대중의 몫을 간과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가 뭘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잘하는 게 중요한 세상이다. 잘만 한다면 누가 누구든 본업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엄정화처럼, 아이유와 레이디 가가처럼 북 치고 장구치고 나팔까지 잘 부는 멀티 엔터테이너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연예계는 넘쳐나는 즐길 거리와 볼거리로 일 년 내내 한가위처럼 풍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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