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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Sep 03. 2020

딸바보 아빠들의 사적 응징에 대하여2

조 기자의 연예수첩 39

이전 회에서 이어집니다


사건이 전해진 다음날에는 죽은 남자친구의 누나와 가까운 지인을 자처하는 한 네티즌이 글을 올려 "가해자의 딸이 먼저 유혹해 성관계를 맺은 뒤 돈을 요구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해 사건의 후폭풍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어느 쪽이 영화이고 현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아 더욱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운 뉴스였다.


누가 먼저 잘못했고 거짓말했는지를 가리는 일은 경찰의 몫이므로 쉽게 결혼을 내리기 힘들 듯싶다.

또 '내 가족이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란 식의 사적 보복, 그것도 수사와 판결 과정 없이 이뤄진 응징 해위가 과연 법적 도덕적으로 어느 만큼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련된 시각차가 불거질 텐데,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두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므로 어느 한쪽을 거들기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은 중년 남성이 자식뻘 소년을 흉기로 살해한,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엄연한 중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말고는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진짜 큰 문제점은 사적 응징이 행해질 수밖에 없도록, 어쩌면 방치하다시피 하는 공권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정당한 공적 응징이 제대로 이뤄져 왔다면 이 같은 비극이 과연 일어났을까, 묻게 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잘못된 인식 탓에 아빠들이 직접 나서는 상황이 영화 안팎에서 오히려 정석처럼 연출되고 있는 배경에는 공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거꾸로 생각해본다.


실제로도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영화 속 아빠들처럼 필살기를 익혀야 하나, 아니면 분노를 다스리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배워야 하나.


그보다는 우선 공권력이 우리 곁에 바로 서기를 기대해 보지만 글쎄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부자들은 하루 교도소에서 일하고도 벌금 5억 원을 탕감받는 걸 볼 때 이른 시일 내 공권력이 바로 서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극소수 부유층 범죄자들의 이른바 '황제노역'을 언급한 마지막 문장은 다시 봐도 눈에 거슬린다. 공권력이 엄격하면서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를 기대하며 마무리 삼아 더한 내용이었지만, 내용의 전개와 어울리지 않아 심하게 어색하다. 역시 글이란 넘칠 듯하면서도 차라리 모자랄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 문장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칼럼을 썼을 당시로 돌아가자. 그때는 딸이 초등학교 4학년으로, 한창 예쁘면서도 조금씩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린이 티를 벗고 하루가 다르게 소녀로 쑥쑥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두려움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고 남중과 남고를 다닌 탓에 주변에 여자라곤 어머니 말곤 없었다. 집안에 하나뿐인 여자(?) 어머니 역시 오랜 세월 남편과 아들 셋을 건사한 탓에 어느 때부터는 온천에 가면 무심코 남탕으로 향할 만큼 남성화(化)됐다. 이성을 자주 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장 과정이 이렇다 보니 딸을 키운다는 건 조금은 낯설고 고단한 과정이었다. 그 낯설고 고단한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특히나 아빠 말이라면 최고인 줄 알았던 딸이 자기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관계 형성에 슬슬 어려움을 느꼈다. 


더불어 소녀들을 상대로 한 흉악 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상황도 걱정을 부추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관련 뉴스에 '이거 어디 무서워서 딸 키우겠나'란 걱정이 수시로 들었다. '테이큰'의 리암 니슨과 '사랑이 아빠' 추성훈처럼 최악의 조건에서도 딸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싸움 실력이라도 갖추고 있으면 모를 텐데, 내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 피지컬로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니 근심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딸바보 아빠들의 액션 활극을 보면 감정이 이입되다가도 나 자신이 괜히 한심스러워 글이나 끄적거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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