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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Nov 23. 2020

추억한다, '살인의 추억'을2

조 기자의 연예수첩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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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개봉과 동시에 평단으로부터 격찬이 쏟아졌고 525만 관객을 동원하며, 시쳇말로 '누워있던' 봉 감독과 제작사인 싸이더스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또 "밥은 먹고 다니냐" "향숙이 이뻤다" 등과 같은 극 중 대사는 유행어로 개그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만큼, 영화를 잘 모르는 대중마저도 사로잡았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지니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쓰임새를 새삼 실감했던 계기가 바로 '살인의 추억'이었다. 누구나 잊고 싶어 하지만 결코 잊어선 안될 미제 사건을 꼼꼼하게 복기하고 재구성한 덕분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함께 분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폭압적이고 암담했던 분위기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가슴 절절하게 반성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같은 감정들은 용의자를 향한 30여 년간의 끈질긴 추적이 마침내 검거로 이어진 과정에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살인의 추억'을 다시 볼 참이다. 송강호 특유의 짝짝이 눈으로 가득 채워질 엔딩이 벌써부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중고교 시절을 보냈던 지난 1980년대 중후반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고 웃기던 시기였다. 전두환 정부의 뒤를 이은 노태우 정부가 '직선제 수용' '범죄와의 전쟁' '북방 외교' 등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는 듯했지만, 실상 우리네 위태로웠던 삶의 현장은 전두환 정부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서였다.


그중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도 불리던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은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전혀 챙기지 않았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길 가는 행인 검문검색에만 신경 쓰던 경찰, 시위 진압에만 투입되던 경찰, 그러나 가장 중요한 민생 치안은 정작 외면하던 경찰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이란 나라의 이처럼 불합리한 구석이 봉준호란 세계적인 거장의 성장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가 '괴물' '설국열차' '옥자'를 거쳐 '기생충'에서 완성한 '봉준호 월드를 통한 사회 비판'의 본격적인 시작이 '살인의 추억'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대도시에 살지 않는 농촌 여자란 이유로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희생자들,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란 이유로 혹은 병석의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와중에 성적 욕구를 혼자 해결한 노동자란 이유로 범인 누명을 억울하게 뒤집어쓴 채 갖은 고초를 당한 남자들은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그 시절 바로 우리 주위에 살았던 이웃들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살인의 추억'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을지 모른다. 연출자가 다뤄보고자 한 이야기의 출발점 이어서다. 이 영화가 작게는 시리얼 킬러를 쫓는 상반된 성격의 두 형사를 앞세운 이른바 '농촌 스릴러'이면서도, 크게는 군부 독재의 잔재인 부조리와 억지로 가득했던 198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를 내려다보는 조감도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주역들인 봉 감독과 제작자인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송강호와 김상경 등은 '살인의 추억'이 이토록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될 줄 그때만 해도 잘 몰랐을 것이다. 2003년 개봉 후 당시 서울 강남의 한 맥줏집에서 열렸던 자축 뒤풀이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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