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55
당시의 술자리를 떠올리며 그럴듯하게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살인의 추억'의 추억이라고나 할까. 꼭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취재 환경 및 풍토의 변화로 인해 기자와 취재원의 직접 대면 접촉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요즘, 그립다면 그리운 추억의 한 페이지다.
싸이더스는 '살인의 추억'이 당시까지 스릴러의 최대 관객수로 여겨지던 500만 고지를 넘어서자 축하연을 마련했다. 앞서 제작한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폭망'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또 싸이더스가 제작 중이거나 기획 중인 신작의 감독들까지 모두 나선 축하의 한마당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장면은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이 기자들에게 "내가 이제까지 봤던 범죄 오락물 책(시나리오를 일컫는 영화계 용어)들 가운데 가장 재미났다. 제목이 '범죄의 재구성'인데, 입봉(감독 데뷔를 뜻하는 일본식 영화계 은어) 감독이 쓴 책"이라며 최동훈 감독을 소개하고 치켜세울 때였다.
임상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최 감독은 그때도 역시 초롱초롱한 눈매가 무척 인상적으로, 선배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범죄의 재구성'으로) 손익분기점 맞추는 게 지상 최대 목표"라고 수줍게 말했다.
하지만 데뷔를 앞둔 신인 감독의 이 같은 희망을 듣고서는 '그럴듯한 케이퍼 무비(범죄 모의와 실행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오락영화의 한 장르로, '오션스 일레븐' '이탈리안 잡' 등이 대표적이다)를 만드는 게 어디 쉽겠어. 데뷔작으로 손익분기점이라니! 꿈도 야무지네'라며 내심 콧방귀를 뀌었다.
이후 최 감독의 행보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영화인 모두의 꿈인 '1000만 영화'를 두 편이나 연출한 최고의 흥행 거장으로 우뚝 섰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의 촉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훨씬 많다.
진짜 사건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축하연을 찾은 톱스타 A가 거듭된 폭탄주로 만취해, 영화 월간지의 한 중견 기자에게 시비를 걸고 달려든 것이다. A의 절친이자 역시 톱스타인 B가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A야 그만해!"를 외치며 만류하자 A는 뒤늦게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상황은 간신히 일단락됐다.
주사로 악명 높았던 A는 나중에도 감독과 제작자를 상대로 각각 주먹을 휘둘러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언제나 '선방'을 날리고도 상대에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단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는 술을 끊고 얌전히 사는 중이라는데, 부디 A가 오래도록 금주 약속을 지켜 멋진 연기를 계속 보여주길 희망한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는 추억의 한 장면이다.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뒹굴던 유명 연기자와 기자,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호통을 친 또 다른 유명 연기자, 둘을 떼어놓는데 애를 먹던 후배 기자들과 영화사 관계자들 등의 당시 모습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논두렁 현장 검증'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다.
어찌 됐든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재미있는 영화로, 웃음기 배어나는 추억으로 그리고 되새기고 싶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실제 사건으로... 앞으로 살면서 이처럼 많은 걸 선물하고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영화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보니 괜히 던져보고 싶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