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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an 24. 2021

한물 간 섹스 심벌의 부활과 사망3

조 기자의 연예수첩 65


연기자가 에로 전문 같은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되다 버려지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게 싫어 강리나처럼 결국 업계를 떠나는 경우도 꽤 허다하다. 옷 입은 모습보다 벗은 모습이 훨씬 익숙한(?) 몇몇 육체파 여배우들의 신작 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면, 십중팔구는 당사자들이 반복되는 노출 연기가 싫어 영화계를 떠난 거다.


남자 배우라고 이미지 탈피가 쉬운 건 아니다. 여심을 자극하는 조각 같은 외모와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로만 대접받는 게 싫어 연기파 변신을 시도하지만, 타의에 의해 대부분 좌절하거나 원점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앞서 얘기했던 임성민을 시작으로 타고난 신체조건을 자랑하는 톱모델 출신이지만 코미디부터 액션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차승원 등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외국 연기자이자, 스페인의 '국민배우'인 하비에르 바르뎀도 이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다. 20대 시절만 하더라도 '하몽 하몽' '골든볼' 등에서 육즙이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진한 이목구비와 건장한 체구만 주야장천 앞세우던 이른바 '노출 전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정 이미지를 딛고 세계적인 연기파로 발돋움했다. 알레한드로 아메네바르('씨 인사이드')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비포 나잇 폴스') 그리고 코엔 형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대런 아르노프스키('마더!')처럼 기성 배우로부터도 새로운 모습을 끌어낼 줄 아는 명감독들의 탁월한 안목과 조련 덕분이었다. 


곁길로 조금 새는데, 바르뎀이 2010년 ''비우티풀'로 그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당시 기자회견을 직접 취재한 적이 있다. 솔직히 일천한 영어 실력 탓에 무슨 말을 했는지 100%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감독과 동료 배우를 세심하게 챙기는 가운데 기자들을 상대로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 모습에서 '인품도 연기만큼이나 훌륭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명 제작자로도 주가를 높이고 있는 브래드 피트도 마찬가지. '델마와 루이스'의 꽃미남 사기꾼으로 벼락 스타가 됐지만 이 작품에서의 섹시가이 느낌이 워낙 강해 자칫 그쪽으로만 낭비될 뻔했다. 그러나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스크린을 위주로 활동했던 배우들뿐만 아니라 안정된 연기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안방극장에서 매번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캐릭터로만 쓰이고 있는 탤런트들의 재발견도 이뤄지길 희망한다. 항상 비슷한 배역으로만 나오다가 이전과 전혀 다른 인물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할 때면 기분 좋은 배신감이 들어서다. 


일례로 3년 전 영화 '강철비'에 박은혜가 간호사로 나온 장면을 보고 깜짝 반가웠다. 비중이 높지는 않았지만 극 전개를 매끄럽게 해 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로, 친숙하면서도 왠지 낯선 느낌이 들어 영화의 몰입을 도왔다. 무엇보다 청순가련 주인공만 도맡던 그가 많지 않은 출연 분량에도 몸을 던져가며 열연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20여 년 전 데뷔 당시 지면을 통해 '리틀 왕조현'이란 닉네임을 선물했던 인연으로 '강철비' 개봉 이후 사석에서 만난 박은혜는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므로, 나이가 들수록 어떤 캐스팅 제안이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님처럼 낯익은 기성 배우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끌어내려 애쓰는 연출자를 만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라고 귀띔했다.


박은혜를 처음 만났던 시점을 떠올리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어느덧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해야 할 시기로 슬슬 접어들었다. '100세 시대'를 전제로 반환점에 도착했다. 운동으로 치면 주 종목을 바꿀 혹은 경기장 바깥의 삶을 알아볼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덩달아 '나의 쓰임새'를 고민하는 시간이 점차 늘고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생존 전문가 에드 스테포드나 '정글의 법칙'의 족장 김병만처럼 변화무쌍한 환경에 자유자재로 적응 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지만, 지금의 밥벌이 하나도 제대로 못해내는 마당에 언감생심 스스로는 꿈도 못 꾼다.


이럴 때면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 날 재활용 기계로 밀어 넣길 공상해본다. 이제까지와 180도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 제2의 삶을 살게 되기를 상상해본다.

하물며 일반인도 이런데 타인에 의해 선택받고 타인의 인생을 사는 게 업인 배우들이 매번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캐릭터만 연기하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을지 짐작이 간다. 물론 그 같은 고민도 연기 욕심이 있는 배우들에게나 해당되겠지만...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요구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을 사는 직업인들이 생존을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 저마다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 애쓰는 건 당연하다. 그럴 때 우선 내가 먼저 남의 숨겨진 쓰임새를 발견하려 노력해보면 어떨까. 열린 시선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나의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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