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8
곱씹어보면 '온라인 댓글 문화'에 대한 반감이 글을 움직인 동력이었다.
그 전만 해도 특정 연예인 혹은 대중문화 상품을 향한 공격과 반대 움직임이 '끝장내기' 식은 아니었다. 기껏 해야 음성 메시지와 우편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였다고 나 할까?
전후 사정은 무시한 채 '어디 한번 죽어봐라' 식의 무차별적인 비난과 폭언을 퍼부어, 당사자들과 해당 작품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진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사이버 공간을 무대로 한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차별적인 혐오 발언들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잘못된 발언을 대중 전체의 반응으로 잘못 받아들인 몇몇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화와 드라마, 가요도 비슷한 신세가 됐다. 한번 찍히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도 전에 무참한 난도질을 당하곤 했다. 평가의 주요 기준인 완성도를 따지고 메시지를 살피는 행위는 정작 이 과정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주인공 박경원의 친일 행적을 주장했던 모 인터넷 매체의 기사와 이 기사에 흥분한 키보드 워리어들의 공격으로 인해, 개봉 직전 '친일 미화 영화'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폭망'했던 '청연'이 대표적 사례다.
100억 원 이상의 순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당시 한국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꿈을 향해 비상하는 여성 캐릭터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짜임새 있게 다뤄 개봉 전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관객수는 5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뛰어난 만듦새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영화를 감상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악할 만한 스코어였다.
인과 관계를 따지긴 어렵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흥행 실패는 개인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타이틀롤을 열연했던 장진영은 그로부터 4년 뒤, 위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상대역이었던 김주혁 역시 지난 2017년 운전 중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해, '청연'은 안팎으로 불운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처참했던 흥행 결과는 '친일 미화'란 근거 없는 낙인과 이를 부추긴 온라인 댓글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므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비슷한 논조의 칼럼을 썼을 것이다.
단, 내용의 전개와 표현의 수위는 달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로 돌아가면 쓸데없이 화를 내기보다는 아주 간단히 이렇게 쓸 것 같다. '청연'의 친일 미화 여부는 작품을 본 뒤 판단하자고 다른 사례들을 곁들여가며 차분하게 설득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었겠지만 말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청연'의 친일 미화 논란과 비슷한 경우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욱 자주 벌어지고 있다.
절대적인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혹은 절대적인 진실을 찾아내려 애쓰기보다는, 자신이 믿는 허구의 뭔가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받아들인 진실과 대척점에 서 있는 대상은 아예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마구 짓밟으려 한다. 그 같은 모습은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등 어느 진영 할 것 없이 꽤 공통적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영화 한 편을 얘기하다 너무 멀리 가 버렸다. 다시 돌아와, 행여라도 친일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 싶어 이제껏 '청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빨리 챙겨보길 권한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청연'은 복권될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