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9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고교 동창을 만났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두 달라 고교 동창들 대부분은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녀석은 졸업한 지 30년이 되도록 일 년에 한 번은 꼭 만나왔던 사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봄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그 녀석의 연락처가 어디론가 날아갔던 차였다.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전화번호부터 물어봤고, 언제나 그렇듯 그 녀석은 낄낄대며 웃는 얼굴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렇게 가장 급했던 용건부터 해결하고 나서 근황을 물었다. 어떻게 지냈느냐고.
머리를 긁적이던 그 녀석은 지난해 가을 한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됐던 드라마로 정식 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근황을 듣자마자 "왜 진작에 얘기를 안 했냐"라고 나무란 뒤 "영화보다 훨씬 좋은 평생직장을 찾았구나"라며 축하했다.
그 녀석은 25년째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아니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으므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누구라고 밝히기 민망하지만 자신을 영화계로 끌어들인 고교 동창이 기자 하겠다고 도망간 뒤에도 우직하게 영화란 한 우물만 바라보고 있다. 모두가 선망하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나서도 말이다.
지난 2006년 11월 7일 '길게 보는 여유가 절실하다'란 제목으로 스포츠서울에 게재했던 아래의 칼럼은 당시 배창호 감독을 만나고 나서 든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참고로 배창호 감독은 칼럼에서도 소개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손대는 영화마다 상업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던 80년대 '한국의 스필버그'였다.
배창호란 이름은 80년대 젊은 관객들에게 요즘의 박찬욱 혹은 봉준호와 비슷한 의미였다. 한국 영화계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배우보다는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감독의 브랜드화'에 성공한 최초의 연출자였다.
물론 배 감독 이전에도 고(故) 신상옥 감독 같은 분들이 있었지만, 이름에서부터 일관된 작품 성향이 강하게 느껴졌던 감독은 아마도 배 감독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신작 '길'의 개봉을 앞두고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배 감독은 영화감독의 조로화를 매우 걱정하는 눈치였다. 과거에 흥행 제조기로 불리던 중견 감독이 "왕년에는 내가 이랬는데..."식의 주책없는 쓴소리를 늘어놓는 것처럼 받아들여질까 봐 다소 주저하면서도, 감독이 일회용 소모품처럼 함부로 소비되는 최근의 한국 영화계 풍토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최근 들어 시드니 루멧 같은 70년대 미국 감독들의 영화를 DVD로 다시 보고 있다"라고 운을 뗀 그는 "이들 대부분은 흥행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작가와 장인의 위치로 천천히 올라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금의 한국 영화계라면 이런 감독들의 활동을 계속 허락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한국 영화계의 냉정한 현실을 완곡하지만 뼈 있는 어조로 꼬집었다.
다음 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