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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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집계해보지는 않았지만, 올해 개봉된 수많은 한국영화들 가운데 60% 이상이 새내기 감독들의 데뷔작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연간 한국영화 제작편수 100편 시대를 맞이한 결과인데, 영화계 일부에서는 '올해 입봉(데뷔를 뜻하는 은어)하지 못하는 감독은 바보' '감독은 넘쳐나는데 쓸 만한 연출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우스갯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을 만큼 신인 연출자들의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쯤에서 올해 첫선을 보인 신인 감독들이 언제까지, 또 얼마나 자주 메가폰을 잡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미안한 예상이지만, 절반 아니 70% 이상은 '데뷔작이 대표작이고 대표작이 유작으로 남는' 상황에 처하리라 본다.
흥행 성공만이 지상 최고의 선(善)으로 대접받는 현 상황에서 데뷔작의 흥행 결과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감독들은 오래 못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게 분명하다.
지난주 한 영화 촬영장에서 만났던 감독의 표정이 떠오른다. 이번 작품이 세 번째인 그는 촬영 강행군의 피로와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초조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상업영화 감독들의 마지노선인 세 번째 영화에서 (흥행에) 자빠지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구성원 모두에게 길게 보는 여유가 절실한 곳이 바로 오늘날 한국 영화계인 듯싶다.
이 칼럼을 쓰고 난 뒤로 배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란 소문마저 없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대중을 상대로 근황이 전해질 정도라면 꽤나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어야 하는데, 2000년대 이후의 그는 더 이상 유명하지 않아서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배 감독은 반갑지 않은 지하철 사고 단신의 당사자가 됐다. 오랜만에 매체에 등장한 것치곤 그리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배 감독은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추락 직후 선로 옆 안전지대로 몸을 피해 다행히 큰 불상사는 면했지만, 1980년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인기 감독이 지하철역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 만으로도 영화계는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영화계가 받은 진짜 충격은 다음부터였다. 단순한 실족이 아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는 얘기가 뒤이어 전해졌다. 배 감독의 절친한 선배로 잘 알려진 이장호 감독은 사고 이유를 묻는 방송 제작진의 질문에 "(배 감독이) 최근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하더라. 그로 인해 사고 당시 순간적으로 판단에 문제가 생겼다고 털어놨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