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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리 Dec 21. 2019

제가 미쳐버리면 어떡하죠?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것이라는 위로

상담을 한 네 번 정도 했을 때는 사실 '이게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심리상담센터를 추천해준 지인은 '열 번쯤 가면 느끼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나는 어떤 일을 겪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편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견디기 힘든 일은 있었을지 몰라도, 고통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계속 내뱉어대고 아무것도 결정하고 행동하지 못해 생각도 선택도 멈춰버린 건 처음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상태를 해결하려면 상담밖에 방법이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행동에 옮겼다.


이런 상황을 너무 해결하고 싶어서 내가 매달린 것들이 있었다. 책을 미친 듯이 읽고, 브런치/미디엄/뉴욕타임스 등을 읽으면서 정보에 계속 파묻혀 지냈다. 계속 읽으면 내 마음을 다스리든, 상황을 해결하든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어쨌든 이런 행위들은 나를 정말 피곤하게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지만, 우울할 때 읽으면 좋을 수도 혹은 정말 나쁠 수도 있는 책이 다자이 오사무 책 같다. 나도 보지 못하는 내 모습, 혹은 내가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모습들을 소설 속 인물들에 녹여낸다. 내 마음을 묘사한 듯해서 공감이 가다가도 그의 삶이나 소설 전반에 드러나는 어두운 면을 볼 때면, 우울한 사람이 읽으면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한껏 웃긴 사람인척 하면서 사는 게 참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한 사람씩 이야기 나누며, 사실은 나 미쳐버릴 것 같다고 못 살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는 엄마한테 나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을 봤을 때, 정말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말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일은 잘 되는지, 내년에 경기가 어렵다던데 회사에 잘 다니라던지, 엄마가 매일 하는 말들을 더 이상 거짓말로 받아낼 수가 없었다. 엄마의 말에 거짓말로 잘 지낸다고 하는 일이 도무지 애를 써도 되지 않았다.


참 괴롭게 된 지 세 달만이었고, 상담을 한 지 두 달만이었다.


어머니가 불쌍하고 불쌍해서, 아니, 우리 둘이 불쌍하고 불쌍해서 아무리 울어도 한이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 <사양>


나는 한참을 울었는데, 엄마는 울지 않았다. 나는 다른 나라로 도망가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싫다고 말했지만 다음 날에는 결국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다. 갑자기 도망가도 되는 자유가 생긴 건가 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탁' 풀리는 동시에, 도망가는 일 앞에 놓인 역경과 고난이 그려지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하여 다만 어머님의 슬픔을 깊게만 하고, 어머니를 쇠약하게만 하고 있었다.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엄마한테 사실을 툭툭 내뱉어대면, 엄마는 시무룩해지고 바보같이 아프곤 한다. 가시 돋친 말도 아닌데, 그냥 사실을 나열한 것뿐인데 엄마는 내가 무너져 내리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신호를 보낸다. 난 엄마의 슬픔을 깊게 만들고 있지만, 내가 살아가야 해서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고 솔직하게 내 마음을 엄마에게 말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해도, 이젠 아무래도 살아가지질 않을 것 같은 허전함. 이런 것이 불안이라고 하는 감정인 것이지, 마음에 괴로움의 파도가 밀려온다.
다자이 오사무, <사양>


괴롭다. 고통스럽다. 상담을 하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와중에 선택할 일들은 많은 것인지,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카오스 같은 상황에서 짧은 시간 내에 인생의 큰 선택들을 계속하는 게 너무 버겁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건 당연하다'는 어쩌면 평범한 말이 참 위로가 됐다.


그래도 날 칭찬해주고 싶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엄마한테 솔직해지는 일에 성공했다고. 물론, 여전히 100%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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