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원이 답이라는 말에 대하여
민족 대명절 설, 구정이 찾아왔다.
한 편으로는 참 정겹고, 한 편으로는 참 견디기 어렵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고 있으면 편안하고 내가 있을 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세상살이 어려움에 이리저리 치였다가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각자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자기의 말이 맞다고 의견을 펴내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요즘 도망갈 준비만 내내 하는 내게, 불현듯 친척 어른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참, 이번엔 말하려고 했는데, 작은 회사에서 방황 그만하고 대기업에 지원해봐.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
회사의 권력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다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치고 올라오고, 누군가는 끌어내려지고. 스타트업에서 나도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의 하찮은 능력은 지금 나이까지는 유효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 어린 사람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더 이상 편한 곳에서 지내며 방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젊을 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 이렇게 나약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
그동안 내가 했던 선택들을 되돌아본다. 대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후회한 선택을 하지 않았는데, 커리어를 펼쳐나가면서는 후회를 남긴 선택이 많았다. 내가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지 고민한 시간도 많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이제야 방황을 시작한다.
너는 뭐든 잘하니까. 잘 헤쳐나갈 거야.
세상 입이 가벼운 엄마가 요즘 나의 어려움에 대해 친척들에게 조금 이야기를 흘렸나 보다. 친척들은 내가 뭐든 잘해나갈 거라 하지만, 이미 내 인생은 이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있다. 그 와중에 대기업에 가라는 친척의 말이 빙빙 맴돈다. 내가 잘못 산 것일까.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내가 내 인생을 망친 걸까.
우리는 각자의 생각이 자기 자신의 행동을 인도하는 진정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믿어도 된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믿어야 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밑도 끝도 없지만, 나 자신을 믿어보고 싶다. 앞으로 인생 긴데 조금 쉬어가면서 나를 돌아보고, 그동안 열심히 산 나를 칭찬도 해주고,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싶다. <자유론>에서 말한 것처럼, 난 다른 사람과 내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했다. 내 생각이 나의 진정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불안함을 버리고, 그렇게 묵묵히 방황을 이어나가고 싶다.
Photo by Olia Gozh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