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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리 Jan 12. 2020

추운 겨울의 차가움이 고맙다.

'나'는 어떻게든 '나답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오늘은 나도 모르게 기다란 롱 패딩의 지퍼를 활짝 열고 지하철 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춥다고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조금은 비속어를 섞으면서 "개 춥다! 존나 춥다!"라고 불평하며 옷을 여몄을 텐데, 오늘은 웬일인지 추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웃음이 났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집에 돌아갈 때는 핸드폰을 계속 붙잡고 SNS를 보고 있노라니, 손 끝이 콕콕 아려왔다. 꽁꽁 얼어버린 손은 내가 살아있음을 오롯이 느끼게 해 주었다. 요즘 너무나 무기력하게 지낸 탓일까. 나 자신이 세상에 존재함을, 살아있음을 또렷이 알려주는 겨울의 차가움이 오히려 참 고맙다.


서울 한 구석의 좁다란 내 방 침대에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조바심이 나긴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 이건 '견딜만한', 그저 힘든 일 중에 하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먹이고 가슴이 턱 하고 막혀서는 샤워를 하면서 꺼이꺼이 울던 몇 주 전과는 다르다. 참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친구가 선물로 준 스노볼 그리고 캔들워머

최근에는 커다란 캔들과 캔들 워머를 샀다. 이 작은 변화가 한밤 중에 내 마음을 따뜻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해 준다. 펑펑 울던 그 똑같은 방이 어쩐지 내 마음의 요새처럼 느껴진다. 바깥의 혼란한 세상과는 다른 나만의 세계 같다. 이마저도 곧 계약이 만료되어 툴툴 털고 작별을 고하겠지만, 지난 2년 동안 내 머리 위의 지붕을 드리워줘서 참 고마운 곳이다. 참으로 걱정이 많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조만간 인생의 첫 공백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자그마한 방에서 가만히 한쪽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세계 각지에서 온 엽서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어떻게든 살 수 있겠지 생각이 든다.

 

스무 살 때의 나와 서른 살 때의 나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고민을 하며 흔들렸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게 있다면, 홀로 내 방의 책상에 앉아서 타자를 두들기는 일이었다.
- 정지우, <고전에 기대는 시간>


스무 살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흔들리고 있다. 비록 스무 살 때의 내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고통과 마음의 치유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지금 글을 쓰듯 서른 살 때의 나도 흔들리되 차분히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든 '나답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직접 제주도에서 본인 촬영, 무단 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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