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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y 01. 2022

클럽 샌드위치 하나 갖다 줘요.

(펠로폰네소스/그리스)  그런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그리스)



커다란 배낭은 아테네 호스텔에 맡겨두고

간단하게 짐을 꾸려 떠나왔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풍경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당일치기로 들러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여러 날 묵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많지 않았다.


가이드 북을 보고 찾아간 숙소는

강원도의 어느 작은 해안마을에 있는

민박집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정갈하게 잘 관리된 느낌이랄까.


싱그러운 포도넝쿨이 엉켜있는 입구에

손으로 쓴 작은 간판이 붙어있었다.



'빈 방 있나요? 1인실이요'



창문이 하나 있는 작은 방에는

연두색으로 칠해진 벽에

초록색 체크무늬 커튼이 걸려있었다.


바닥에는 낡은 카펫이 깔려있고

새 시트가 깔린 싱글 침대가 놓여있었다.


예쁜 것도 아니고, 오래된 느낌이 났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따뜻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 방 제가 쓸게요. 일단은 한 3일 정도요.'








주변에 예쁜 해변이 있다는 말에

선크림, 수건, 책 한 권을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여기서 오른쪽이라고 했나? 저긴가?'



손바닥만 한 지도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길을 찾고 있을 때 누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 찾는데?"




노천카페 와인색 천막 아래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있는 남자였다.


아저씨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들어 보이고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중년의 노신사였다.




그는 옆자리 의자를 빼고

손으로 의자를 툭툭 두 번 쳤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해변을 가리켰다.




"아 해변 가는구나. 여기 가려면"


그는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면서

해변에 가는 길을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한번 더 설명을 해줘도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저만큼 가서 한번 더 물어봐야겠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일어나려는데

그가 묻는다.


"점심 먹었니?"


뜬금없는 질문에. 헤아려보는데

오늘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뒤에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찾는다고 돌아다니느라 정신없어

점심때를 놓쳤다.






"아직이네요. 오늘 도착해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는 미소를 짓더니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여기 클럽 샌드위치 하나."


순식간에 웨이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받아갔고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여긴 관광객이 별로 많지는 않거든. 특히 최근에는 더"







굳이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을 이유도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이 대화의 시작을 끊고

먼저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해변은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그만이고.

내일 못 가면 모레 가면 그만이고.

안 가도 그만이니까.




나는 같은 여행자들보다 

현지인들과 나누는 대화가 훨씬 재밌다.


겁도 많지만 호기심은 더 많은 나는 궁금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생각이.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은 운 좋게 그들의 일상으로

초대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겁이 많아서

모든 초대에 다 응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아까 그가 주문한 클럽 샌드위치 말이다.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디서 왔냐는 그의 물음에

한국에서 왔다는 답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지? 지금 내 꺼를 시킨 건가?'


'아니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본인껀가? 물어봐?'


'이러다 내 거라고 이따가 눈퉁이 맞는 거 아니야?'


'얼마였는지 메뉴판은 보지도 못했는데'






그리스 경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얘기부터

이곳에는 젊은 사람들은 많이 남지 않았다는 얘기

관광객이 대폭 줄었다는 얘기

한국은 어떤 곳이냐는 얘기

학생이면 전공은 뭘 하냐는 얘기

부모님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시냐는 얘기까지


얘기를 신나게 나누다 보니

그가 주문했던 클럽 샌드위치가 나왔다.


돈가스집 그릇처럼 큰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가 중앙에 놓여있고

감자튀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꼴깍 침이 넘어갔다.





"먹어봐. 클럽 샌드위치 끝내줘"


"나? 이거 나 먹으라고?"


그는 그릇을 내쪽으로 밀면서

얼른 먹어보라 손짓으로 재촉했다.






'잘 먹겠다고 해야 해나?'


'이거 내가 계산하는 건가?'


'고맙다고 해야 해나?'


'아니 내가 계산하라고 하면 고마운 건 아니잖아?'


'이것도 일종의 호객행위인가?'


'나중에 터무니없는 계산서 내미는 거 아니겠지'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어왔기에

감자튀김으로 손을 뻗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배도 고팠으니까 잘됐지.

맛있게나 먹자. 먹었으면 돈은 내는 게 맞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감자튀김은 따뜻하고 담백했다.

클럽 샌드위치는 신선하고 맛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음. 이거 진짜 맛있네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가 정확히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거리를 바라보다 가끔씩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감탄을 하면서 맛있게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맛있어?"


"네. 저 배고팠나 봐요"





식사를 마쳐갈 무렵

그는 관광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 질 녘에 걸으면 끝내준다는 산책로에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남아있는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뜻하지 않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덕분에 맛본 클럽 샌드위치도 성공적이었고

즐겁고 여유롭게 즐긴 한 끼 식사였다.


요즘 계속 밥을 혼자 먹어 그런지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슬슬 일어설 준비를 하면서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아니야. 이건 내가 대접하는 거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계산할게요. 어떻게 그래요."



"정말 괜찮아.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거 맛 보여주고 싶었어. 

 사실 여기 내 가게거든. 덕분에 즐거웠어.

 

 아까 말한 그 산책로.

 지금 딱 좋을 거야. 찾을 수 있지?


 네 여행 행운을 빌어.

 여기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들러도 좋고"









+ps

그는 내가 계산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대신 여행 무사히 잘 마치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가 알려준 산책로는

그의 표현대로 정말 끝내줬다.


그가 알려준 바다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 산책로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사기를 치거나, 괴롭히려 들거나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협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곤경에 처한 나를 기꺼이 재워주거나

처음 보는 나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고

처음 보는 나의 밤길. 뒷모습을 지켜봐 주거나

처음 보는 나를 대신해서 부당함을 따져주는


그런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니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편하고 좋았던 숙소


숙소로 향하는 펠로폰네소스 마을의 골목길
한 폭의 수채화 그림 같은 그리스의 봄


책 한 권 들고 가서 즐기던 펠로폰네소스반도 작은 해변




펠로폰네소스에서 보낸 날들이

유난히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은

나의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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