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덜어내는 중,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by 노아의 독백

비로소 나의 아픔을 인정한 오늘, 이 공간에 덜어내고자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 막 시계는 자정을 넘어섰고 빗소리가 서서히 주변을 맴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이 공간에 내 아픔을 적어보려고 한다. 애써 외면해 왔고 부정해 왔지만 이제는 과감하게 인정한다. 나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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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음으로 아팠을 때는 애써 부정했다.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애쓰고, 모두가 외롭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고 그게 맞다고 믿어왔다. 내가 머무른 공간과 환경을 방패 삼아 애써 부정했다. 말하지 않았고, 알리지 않았다. 말하기 싫었고 알리기 싫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나와 다른 이들 모두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조차 나를 외면해 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가면을 써온 삶, 또 하나의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공존했다. 가면을 쓴 나조차 나였고, 가면을 쓴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가면을 쓴 나는 웃었고 울었다. 그렇게 가면을 쓰지 않은 나는 서서히 녹아내렸다. 마음 한편 웅덩이로 고여있었고 웅덩이를 애써 밟지 않았다. 웅덩이에 비친 가면을 쓴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라져 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 나를 꾸준히 외면하는 나, 첫 번째 증상이었다.


숙면(熟眠), 깊은 잠에 듦을 말한다. 숙면은 나의 오랜 염원이다. 이뤄낼 수 있을까, 매일 그리며 잠에 들었다.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이 아닌 항상 새벽을 헤맸다. 꿈이 많아 그런가, 매일 꿈을 꾼다. 매일 가득 찬 꿈을 꾼다. 매일 수 권의 이야기를 꾼다. 나는 매일 꿈꾸고 있다. 꿈에서 꿈을 본다. 일어나면 아직 꿈 속이다. 그렇게 밤을 보내니 나의 새벽은 적게는 세 조각, 많게는 열 조각도 나있다. 나는 새벽을 나누어 보낸다. 꿈을 많이 꾸니머리가 무겁다. 이야기는 엉성하고, 익숙하며 나를 웃기고 울린다. 어느 순간부터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아직 머무르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안녕을 물어왔다. 신명 나게 웃기도 했고, 가득 차게 울기도 했다. 기분 좋은 바람을 맞았고 결이 맞는 음악을 함께했다. 물어보지 못할 이야기도 나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숙면을 바란다. 좋은 꿈을 꾸기를 염원한다. 아니, 이왕이면 꿈 없이 깊이 잠들기를 바란다. 아침은 항상 가볍기를 원한다. 숙면은 나의 오랜 염원이다. 두 번째 증상이었다.


쉬고 싶다. 하지만 쉴 줄 모른다. 가벼워지고 싶지만 매일이 무겁다. 일도 사람도 그리고 사랑도 여전히 덜어내지 못한다.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글을 쓰는 나, 여전히 가벼워지려고 애쓰는 순간이다. 반성과 회고를 한다. 학위 3개를 얻은 대학 생활 4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와 군사훈련, 졸업하고 직업군인으로서의 삶, 전역 후 다음 날 출근. 그렇게 지난 1년, 주 6일 일을 하며 힘든 걸 외면하고 살고 있다. 미치지 않고 즐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성공할 줄 알았고 그게 내 방식이자 강박이었다. 그렇게 또 나를 외면했다.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는 나를 또 외면했다. 흘려야만 아픈 것이고 아파야만 아픈 것일까. 보이지 않는 상처는 보이는 순간 더 아픈 걸까. 가고자 하는 길을 후회하지 않았고 가고자 하는 길을 끝없이 의심했다. 사람들에게 말한다. 즐기자고, 애쓰자고 그리고 가벼운 행복을 찾고 우리는 또 웃음에 익숙해지자고, 때로는 북받치는 울음을 외면하지 말라고. 대신 이왕이면 조금만 울기를 바란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즐기고, 성장하기 위해 애쓰며 소소한 성취와 행복으로 웃음을 찾았으면 했다. 눈물을 등한시하지 않고 감정에 발 담가 울었으면 했다. 다만, 슬픔이 너무 깊어지지 않으면 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세 번째 증상이었다.


남 부럽지 않게 따듯한 사랑을 했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감사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있기에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다. 다만 따듯한 사랑을 알아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다. 여름의 무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은 그저 그날의 온기만을 떠오르게 한다. 억지로 찾아 헤맨 결과는 늘 처참했다. 마음을 다 내주었고 또다시 찾아온 따듯한 사랑에 일상은 늘 해변이었다. 바다를 보며 평온을 찾았고 끝없는 지평선을 보며 안정을 취했다. 하지만 해변을 내어준 사람은 가볍게 나를 지나쳤다. 또 지나쳤다. 지나친 곳에는 눈치 없는 발자국만 남아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가끔 또 바라본다. 해변을 잃은 피서객은 이제 지평선을 바라보지 못한다. 해변에 발을 담그며 잊었던 따듯함을 다시 느꼈고 바다와 지평선을 보며 찾은 안정은 이제 또다시 갈망에 대상이다. 갈망에 대상은 커져 집요함이 될 것 같았고 이 감정이 싫어 두려움으로 키워냈다. 이제는 무섭고 무섭다. 더 할 표현이 없다. 평온과 안정은 없고 매시간 흔들리는 파도만이 남아있다. 내게 남은 사랑을 다 주고 싶었다. 이제 남은 건 흔들리는 파도뿐이다. 네 번째 증상이었다.


이제는 과감하게 인정한다. 나는 아프다. 아픔을 알려 아픔을 인정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