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리는 저녁,
서른이 되기 전, ‘나’라는 인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사라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단조롭게 혹은 반듯하게 정의하고 싶었다. "어제의 나는 누구였으며 오늘의 나는 누구이고 또 내일의 나는 누가 될 것인가." 더 성숙해지기 전에, 어리숙함이 사라지기 전에 온전한 지금의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매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대답 없는 물음으로 이번 ’낙원의 바람은,‘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내어준 아득한 새벽에게 잔잔한 박수를 건넨다.
‘낙원(樂園)’이란,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이라 말한다. 이곳에서는 또 어떤 바람을 꿈꾸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이곳에서 부는 바람이 궁금했다. 글을 빌려 있는 그대로 직시했고, 글을 빌려 이상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그대가 살고 있는 낙원은 지금 어떠한가, 그대가 바라는 낙원은 어떠한가, 내가 향하는 낙원은 이렇다.
낙원은 상상의 공간이다. 이는 매번 다른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언제나 품어온, 언젠가 그려갈 이상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시간, 공간, 계절 그리고 마음의 온전함에 따라 매번 변해갈 것이다. 변덕스러운 나를 투영할 그런 곳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직 나만이 꿈꾸는 공간이며 이는 곧 내가 주인임을 말한다. 함께하고자 하는 건 초대받은 손님의 몫이다. 나의 낙원은 너무 넓지 않았으면 한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곳과 들어오지 않는 곳이 그리 멀지는 않았으면 한다. 넓지는 않지만 큰 창문과 높은 층고로 시야가 확 트였으면 한다. 속이 뻥 뚫릴 수 있게. 창문에는 바다를 그릴 수 있는 푸른색의 얇은 커튼이 있었으면 한다. 햇볕도 자연스레 들어올 수 있는 얇고 파아란 색. 창문과 커튼 사이에 살며시 들어오려는 햇볕은 언제나 환영이다.
벽지는 너무 하얗지도 그렇다고 애매하지도 않은 그런 색상을 원한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채도 정도로 과하지 않게. 멍해져도 되는 그런 색. 벽지 위 괜찮은 공간에 액자를 걸어두려고 한다. 제주도의 겨울 바다를 담은 사진, 언제 찾아도 그리울 고향의 산책로,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만 그릴 수 있는 추억 속 사진들. 또 언젠가 떠날 그곳의 낮과 밤을 담아 걸어둘 것이다. 언제나 그때를 느낄 수 있게 정말 마음에 든 사진으로 해야겠다. 곳곳에 식물도 키우려고 한다. 초록잎을 가진 식물들을 항상 매력적으로 느꼈다. 말 한 번 걸어보고 싶은 한 두 살의 아이들 같다. 역시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 하는 것 같다. 녹색의 잎은 조금 더 나를 가볍게 만들어준다. 신경 쓸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 서로 자연스레 안부를 주고받는다. 낙원의 손님들에게 나를 투영한다.
슬슬 해가 질 무렵이다. 낙원을 가득 채워둔 조명을 소개할 시간이다. 경복궁 근처 어딘가에 놓여있을 법한 주황의 조명을 곳곳에 펼쳐둔다. 참아왔던 빛을 뽐낼 시간이다. 스스로 빛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가득한 주황빛과 섞일 클래식한 노래도 필요하다. 이왕이면 재즈를 살짝 가미한 팝송으로. 턴테이블을 꼭 구비해야겠다. 재즈가 머물렀다면 클래식한 한국의 노래도 더해준다.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절의 노래. 가사를 읽으면 그려지는 음악을 좋아한다. 가사를 그리다 보니 초대 가수들이 막 떠오르고 있다. 유재하, 여행스케치, 이문세, 장혜리. 가사가 없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낙원과 조금 더 가까워지려면 지금 떠오르는 노래를 들어야겠다.
故유재하 님의 1집 앨범 수록곡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中,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우려 하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모습 그려 가리"
따듯한 차를 마시면 잠이 잘 오는 편이다. 카모마일을 좋아한다. 매일 새벽을 헤매는 데 있어 이정표가 되어준다. 아침을 맞이하는 커피와 밤을 지켜주는 차를 준비해 두어야겠다. 함께하는 사람이 좋아해 주었으면 한다. 주황빛의 조명, 초록을 감추는 식물들, 다가오는 밤을 안겨 받는 푸른 커튼 그리고 언제나 돌아가는 턴테이블까지. 어디선가 의식할 수 없는 은은한 향 마저 낙원을 가득 채운다. 옆을 지켜준 자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눈빛이 애써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오늘의 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