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게 참 요상해서 어떤 때에는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마치 바닥을 뚫고 지구 반대편에 닿을 것마냥 가라앉다가, 갑자기 어느 날에는 헬륨풍선마냥 하늘 높이 붕 떠서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두 경우가 달라 보일지라도 결국 같은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지표면에서 벗어나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한 변폭은 어떤 의미로든 좋지 않아서 결국 그 둘 차이의 절대값이 클수록 계속 흔들리다가 어느 날, 마치 차안에서 마구 흔들린 소다캔이 터지듯이 쉽게 빵 터져버리고 만다. 그러면 그 날은 제어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하늘로도 땅속으로도 가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흩뿌려진 소다마냥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렸으면 하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지금의 힘든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어 보여서 정말 앞으로 그러하고자 둘이 다짐했다. 그러고서는 그래도 끓는 속이 가라앉지 않아 평정심을 찾기 위해 어찌해야할까 하다가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컴퓨터로 같이 보기로 했다. 둘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영화를 보는 것이 몇년 만인지 모르겠다.
영화 내용은 잔잔했다. 적당히 평범한 삶의 테두리 내에서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크고 작은 흔들림들을 약간의 드라마틱한 방법을 써가며 편편한 상태로 유지하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요약하면 너무 정없고 감동을 무산시키는 일이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이건 감동을 떠나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그 '방법'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발판삼아 자신이 태어나 밟아온 삶의 수준 내에서 가장 평범하게 사는 것을 택했다. 그 평범 속에는 불행도 있고 행복도 분명 있는데, 그 둘중 무엇을 더 크게 느끼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다시 살아보니 여유없고 화만 가득했던 그 날의 삶에 생각보다 행복할 수 있을만한 순간이 많았다. 그것을 찾느냐 마느냐는 결국 스스로에게 달렸고, 그것을 매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삶의 편편함을 유지하는 가장 큰 기조인 것이다.
...라는 정도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었던 가장 큰 교훈은, 남편 말에 의하면, 그러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란다. 긍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렵다. 불행의 늪 속에 한번 빠지면 긍정이란 단어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그랬듯이 무던히 노력해서 그것을 습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운동이 몸이 좋은 줄 모든 사람이 알지만 대부분 그걸 습관화시키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우리에게 주인공같은 꼼수는 주어지지 않아 습관화가 그보다는 훨씬 더 어렵겠지만, 주인공의 모습에 대리만족하며 우리는 그 습관의 중요성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남편의 그 말에 굉장히 동의하면서도 나는 왠지 약간 찔려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작년 말의 어떠한 터닝포인트 이후로 마음을 항상 밝게 먹으며 뭐든 열심히 하리라 다짐했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의 삶에 집중하기로 말이다. 교과서같고 마법같은 긍정의 태도를 진짜 체득한 듯 했다. 마치 삶이 새로이 시작되는 듯했다. 십년묵은 마음의 그늘막이 환히 걷히고 뭐든 할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의욕이 항상 넘쳤고 긍정의 기운을 습관하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한때는 좋은 면만 바라보기 선수가 된 듯 했다.
그러나 이를테면 내가 그런 마음가짐을 습관화하는 속도보다 일상의 사건들이 내 긍정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빨랐던 것이다. 올해들어 유독 그게 심했던 것 같다. 둘째가 아직 어린 시기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예전같지 않은 스케일로 예전보다 더 많이 터지는데 무너져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시 다잡고 하다가, 5월 중순 들어서부터는 마음을 다시 다잡는 방법조차 잃어버렸다. 마음의 근육이 사라졌다. 한번 중심으로 돌아가는 끈을 놓으니 작은 일에서도 더 큰 변폭으로 삶이 흔들리고, 그러다 결국 지난 주말에 작은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던 마음이 소다캔 터지듯 뻥 하고 터져버려 안에 있던 부글거리던 것들이 온통 공기중으로 날아가버린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소다캔과 나의 다른 점은, 터진 소다는 공중으로 흩어져 맘편히 사라질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 기분은 비록 그럴지언정 몸뚱아리와 의식과 나로인해 생겨난 수많은 책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소다가 약간 부러워졌지만 여전히 내가 실체하는 이상 별 수가 없었다. 미치지 않고 살아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영화를 봐서 조금은 그 방법을, '모두가 아는데 나는 잘 실천하지 못했던 그 방법'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실천하기로 했다.
좋은 면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마치 운동처럼 연습해서 습관화해야하는 일이다.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마냥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 되어야지만 이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런 걸 원래 잘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현명한 부모의 영향으로 그 습관을 배워왔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사실 그걸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올해에는 남편이 나보다 더 어두운 인간이 되어버렸지마는, 어찌되었든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부럽다. 그들도 그들만의 고통이 있겠지마는 확실히 회복탄력성이 나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아 그런 점은 굉장히 대단해 보였다.
나는 어릴 때 아무리 잘해도 늘 혼이 났다. 게다가 늘 다툼을 보고 자랐다. 맞고 때리는 것을 자주 보았고 때로는 나도 맞았다. 집은 일주일에 서너번 꼭 시끄러웠다. 저항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체념하고 좁은 집의 거실에서 퍼져나오는 아주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고자 자주 침대에 숨어 귀를 막고 울었다. 내 울음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들이지 않도록 말이다. 궁상스럽지만 이게 내가 생각하는 20세 이전 과거 속 내 모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좋은 기억은 모두 엄마 덕분인데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어쨌든 많지는 않고, 나쁜 경험들은 아예 지워버렸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정말로 컴퓨터 파일 지우듯 삭제해버렸다. 엄마와 동생이 증언하기를 나는 확실히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기억에서 삭제해 버린 것 같다고 한다. 일종의 생존전략처럼 말이다. 과거를 기억해보면 마치 손상된 테이프를 재생한 것 마냥 기억의 일정 부분이 지지직거려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뜨문뜨문한 것은 그저 그렇다기에는 좀 많이 불쾌한 기분이긴 한데, 아무튼 이렇게 나는 긍정의 습관은 커녕 체념하고 지우는 것만 배웠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뭐든 잘 안되는 것은 결국 쉽게 체념해버리는 내 무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내 탓이 맞지만 가끔씩은 괜히 무언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 과거를 굳이 떠올리며 지워진 부분을 원망해 본다. 그게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을 마음껏 원망한다. 지워진 부분이라 뚜렷한 대상이 없으니 죄책감없이 한없이 원망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이든 그냥 태생적으로 그렇든 내가 어리석고 바보같아 그렇든, 어쨌든 나는 미국에 와서부터는 처음 맞닥뜨리는 새로운 유형의 시련 앞에서 무방비상태로 흔들리기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법을 잘 모르며 살아왔다. 최근들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약 6개월 간의 연습으로 쉽게 될리 없으니 얼마전에 이런 사단이 난 것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러한 고통과 실패와 깨달음을 발판삼아 나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아이들과도 함께, 때로 사는 게 어렵더라도 행복한 부분을 찾아가며 고통을 이겨냄과 동시에 편편한 삶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여 그것을 체득화하는 것이다. 나부터 해보고 잘 되면 아이들에게도 서서히 전파시킬 것이다. 아이들은 나로 인해 태어났고 그것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다. 나라는 엄마에게 나게 한 것이 미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제 정신으로 기왕이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나의 막중한 임무일 것이다. 그 방법을 알고 있지만 습관화시키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습관화가 가장 중요하고 그것은 부모가 도와줘야만 하는 부분이다. 일단 나부터 잘 해봐야겠다.
+ 글을 쓰며 떠오르는 테드 하나. 항상 평정상태로 돌아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