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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의 설렘 Feb 05. 2022

1. 월급 없이 잘 살아보겠습니다

대신 내 삶을 살래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월급은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도전과 모험 대신 '현실과 안정'이라는 길을 골랐더니 행복하지가 않아서 이제는 달라지기로 했어요.
하고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실천해나가는 과정을 이곳에 하나씩 기록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시작을 망설이는 일이 있나요?
알 수 없는 미래를 재고 재다가 포기한 것들이 쌓여 후회한 게 한 트럭인가요?
저도 그래요.
서른 가까이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달라지려고요.
남을 위해서, 책을 내려고, 돈을 벌려고 글을 쓰진 않으려고요.
온전히 나를 위해서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려 합니다.
기왕 쓰는 글, 누구라도 읽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고요.





1. 월급은 포기합니다. 대신 내 삶을 살래요


2022년. 29살이 되었다.

엄마아빠 밑에서 독립하기까지는 6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사갈 집과 지금 일하는 병원이 멀어져 다음주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실감이 나질 않아서 (가 아니라 게을러서인 거 같지만) 당장 다음주에 이사를 가야하는데도 짐도 싸놓지 않았다.

아마 전날밤에야 부랴부랴 이삿짐을 꾸리지 않을까. 그나마 새로운 일을 구해야겠다는 위기의식은 있어서 내게 월급을 줄 병원이 어디인가 찾아보고 있다.


그런데, 숨이 막힌다.

내가 다시 주 6일이나 일을 할 수 있을까?

돈은 벌어야 하는데...

병원 근로는 노동법에서 권고하는 '9 to 6  + 주 5일제'도 아니고 그보다 더 일해야 한다.

보통 병원들은 평일이면 저녁 7시~8시까지 운영을 하고 토요일에도 문을 연다.

그 말은 즉 나도 그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것. 9 to 7 + 토요일 무조건 노동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 끔찍해. 난 절대 못 버틴다고!'. 속마음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깊은 한숨만 내쉬어진다.


그보다 덜 일을 해도 된다는 원장님은 영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병원일로 돈을 벌려면 참고 일해야 한다고 토닥여봐도 소용이 없다. 절대 그럴 자신이 없다.


작년 2월, 풀잡을 그만두었다.

평일엔 오전 8시 반부터 6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엔 1시까지 일하고, 일요일 하루를 침대와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보면 월요일이 시작되는 생활을 1년쯤 반복하니 죽을 것 같았다.

주 6일제 그물에 걸려 뻐끔뻐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밥을 먹고 조금 쉬다보면 잘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패배감으로 하루를 마감했고, 내일도 그 내일도 똑같이 암담한 아침을 맞이했다.

일에 보람과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퇴보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 달 한 달 돈을 번다는 것 외에 득일 게 없었다. 미라클 모닝&이브닝을 실천하려고 애를 썼지만 의지가 부족했던 탓인지 번아웃이었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 버는 일 말고, 하고싶은 일과 해야할 일은 산더미같이 머릿속에 쌓이는데 하지를 못하는 내 자신에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답답함만으로도 퇴사 욕구가 치솟는데, 실장직을 단 놈(아주 순화시킨 표현)이 사사건건 지적질을 했다. 누가 들어도 기분이 나쁠 말투로 쏘아대던 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이순으로 치면 가장 막내인 내가 가장 만만했는지 아니면 내가 정말 일을 끝내주게 못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이 '윗사람으로서 가르쳐준다'는 명목하에 본인 짜증을 내게 푼 것인지 물어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야 없지만, 그랬다.

한 동료는 태평한 얼굴로 어떻게든 일을 덜 하곤 했고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기던 그의 태도가 갈수록 참기 힘들어졌다.

내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에 분노가 폭발했다. 근무 시간에 하루에도 몇 번은 속으로 쌍욕을 했다. 환자들에게 짜증을 냈다. 그래선 안된다고 머릿속에서 나를 달래고 질책해보아도 그때뿐. (지금 돌이켜보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나만 깎아먹는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는 걸.)


쌓일대로 쌓여 홧병이 났다. 결국 작년 2월에야 파트잡으로 일을 줄이고 싶다고 원장님께 고했다.

다행히 수락되었고, 그날 홧병이 나았다.  

주 4일간 딱 생활비를 벌 만큼만 돈벌이를 하고 나머지는 자유인 11개월을 보냈다. 그간 아주 만족스러웠다.

반백수로 사는 게 천직이라는 걸 그간 몰랐다니.

돈을 안 버는 대신 그만큼 엄청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뭘 꾸준하게 해서 돈을 더 벌고 성취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고 2021년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적을 수 있었다.

무엇이 됐든 만족감을 주느냐 아니냐가 내 삶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에 더할 나위 없는 적합한 생활 방식은, 경험컨대 '풀잡'은 아니라는 걸 이젠 너무 잘 다.


그런데도 '현실'에 못이겨 풀잡을 찾고있으니 기가 찼다.

'아,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중얼거리면서도 근무조건이 나름 괜찮아 보이는 병원 한 곳에 이력서를 보냈다.

6시 퇴근을 하고싶다는 한 가지 희망사항을 자기소개서 끝에 적었더니 원장님께서 안 된다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번 한 해를 또다시 분노에 차서 보내더라도 매달 필요한 생활비와 적금을 들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거듭 하던 차, 오늘 오후에 잡코리아에 공고가 하나 떴다.

2월부터 주말 근무가 가능한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이거다! 하는 직감이 왔다.

이거면 주말에만 일해도 월세와 최소 생활비가 충당이 된다.

나머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머릿속에서 촤라락 펼쳐졌다. 이건데? 내가 원하는 게? 대박!

하고 마음이 들뜨면서도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현실을 생각해!

대체 무슨 현실인진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재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와 결과까지 재고 재기'를 30분간 하다가 이럴 때 조언을 구하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듣고싶은 말을 듣고 용기를 내기 위해서였다. '네가 원하는 게 이미 나와있다. 하고싶은 대로 살아보아라.' 라고 응원을 받았고 결심이 섰다.

이번 해에도 내가 살고픈 대로 살아보기로.

'현실을 생각해라, 돈을 모아두지 않아서 아빠 나이대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봐라, 네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 안 남았으니 일해서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롭게 살 거냐,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엄마 아빠 밑에서 사니까 가능한 거다 너 혼자 살게 되면 그러기 어렵다.' 등등...

줄줄이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만들어내는 부모님과 사회생활 좀 했다는 어른들의 말은 일단 버리기로 했다.


지원 문자를 넣은 병원에선 5시간째 답이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여기 말고도 갈 곳은 많다고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선택지가 넓어진 느낌에 2022년 목표에 하고싶은 일을 추가로 더 적어보았다.

나, 하고싶은 일이 정말 많구나.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벌어보고 싶고, 수익을 내는 파이프를 여러가지 만들고 도전해보고 싶어.

내 재능들을 발굴하고 계발해내고 싶어

1년간 방치한 브런치에도 꾸준히 글을 발행하고 싶고

뭘 하고 싶고가 50개는 된다니

와우!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


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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